
“물질은 인류 문명을 어떻게 형성해왔는가.”
미국 출신 재료공학자가 쓴 ‘문명과 물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다. 돌·점토·구리·청동처럼 고대에 발견된 물질부터 현대에 등장한 시멘트·실리콘·폴리머까지 ‘문명’과 ‘물질’이 함께 진화해온 방식을 살핀다. 저자는 석기시대에서 출발해 20세기 후반까지 ‘물질의 연대기’를 통해 사람의 일상을 바꾸고 국가의 흥망을 좌우한 ‘차가운 것들’의 역사를 기록한다.
우선 인간이 열을 가해 물성을 바꾼 최초의 물질은 ‘점토’이다. 약 2만6000년 전 지금의 체코 지역에 살던 기술자들은 점토를 화덕에서 구워 토기를 만들었다. 액체를 담는 토기의 출현은 ‘곡물 경작법’과 함께 신석기 혁명의 기반이 됐다. 저자는 “그전까지 돌이나 뼈로 도구와 무기를 만든 방식은 재료의 ‘형태’를 바꾼 것일 뿐 ‘특성’을 바꾼 게 아니었다”며 “토기 제작법은 인간이 자연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기념비적 발견”이라고 말한다. 이후 ‘철의 발견’은 가마 온도를 높이는 기술 개발의 촉매가 됐으며, 가마 온도 상승으로 유리를 다루는 기술도 향상됐다. ‘진귀한 물품’에서 ‘일상용품’으로 바뀐 유리가 과학용 소재로 처음 사용된 건 1200년대 후반 안경에 들어가는 렌즈가 나왔을 때라고 한다. 뒤이어 1500~1600년대 광학 망원경과 현미경 등이 등장하며 ‘관찰 활동’의 신기원이 열렸다. 시멘트와 파쇄석, 모래를 섞은 콘크리트는 건축계 판도를 바꿨으며, 제철 기술의 발달로 얻은 강철은 1800년대 ‘고층 건물’의 시대를 열었다.
국가의 위상과 세력 역시 ‘물질’을 통해 구축됐다. 로마 알렉산더 대왕은 트리키아에서 추출한 금으로 대제국을 건설했고, 그리스는 아테네 은광 덕분에 페르시아의 에게해 진출을 막을 수 있었다. 중국이 광범위한 무역과 탐험에 나선 바탕엔 종이·나침반·화약 같은 물질이 있었으며, 영국은 세계 최대의 석탄을 보유한 덕에 여러 제품군을 대량생산하는 산업혁명의 중심지가 됐다. 미국은 실리콘과 광섬유를 기반으로 정보 혁명의 본거지로 거듭났다.
이 밖에 책은 항공기나 테니스 라켓, 낚싯대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사물을 구성하는 물질을 기술 발전의 역사와 엮어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는 “물질은 역사의 흐름을 이끌고, 물질을 정복하는 자가 세계를 정복했다”고 강조한다. ‘문명과 물질’은 약 40년간 코넬대 교수로 재직한 저자가 1998년 펴낸 책으로 20년 이상 흘렀지만 역사 교양서로 읽기엔 부족함이 없다. 360쪽, 1만9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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