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우 논설고문

文 ‘친노조’ 4년에 고용 역주행
좋은 일자리 줄고 비정규 급증
기득권 노조와 노동 경직성 탓

이런 진실 눈감고 엉뚱한 주문
임금 양극화 실상 속이지 말고
솔직한 처방 내놓을 용기 절실


우리나라 대기업 노동자 임금은 선진국 수준이다. 그런데도 임금 쟁의는 그칠 줄 모른다. 지난달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파업을 벌였다. 노동 귀족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울산 본사 내부도로를 돌며 경적을 올렸고, 본사 앞에서 집회도 열었다. 노사는 이미 성과급·격려금을 비롯해 복지포인트 등의 지급에도 합의했다. 하지만 ‘애들 껌값’이라며 노조원들이 퇴짜를 놓았다. 노조 파업이야 일상이라지만 요즘 대기업들에는 또 다른 고민이 추가됐다. 사무직 노동자마저 별도의 노조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이다. 하는 일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불평 때문이다. 현대자동차·SK하이닉스·금호타이어 등에서 사무직 노조가 출범했거나 만들어지는 중이다. 사무직 노조까지 겹치면 임금 부담은 더 커질 게 뻔하다.

이런 처지이니 어느 기업에서 일자리를 늘리고 싶을까. 친(親)노조-반(反)기업 정책을 쏟아낸 문재인 정부 4년간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 24만2000개가 사라졌다. 대신 같은 기간 비정규직은 95만 명 늘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휘하에 두고 있는 것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양대 노총이다. 노조 위세가 하늘을 찌르니 한번 고용하고 나면 해고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당연히 정규직 고용을 기피하고 비정규직에의 의존도를 키워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양대 노총은 전체 노동시장과 노동 제도를 좌우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동 기득권은 난공불락의 성채를 이루고,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청년 취업예비군 간의 불균형과 양극화는 커지기만 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평균 임금이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기업의 75% 수준이었으나 최근에 53%로 떨어진 이유를 이해하겠는가.

노사관계를 주축으로 기업 측 의견을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바로 이런 문제들을 다루는 기구다. 그런데 경총이 최근 ‘2021년 임금조정과 기업 임금정책에 대한 경영계 권고’라는 이름의 독특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따르면 고임금 대기업들에 대해 올해 임금 인상을 필요 최소한의 수준으로 시행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야 당연한 이야기다. 문제는 다음이다. “대기업 고임 근로자의 지나친 임금 인상은 중소기업이나 취약계층에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이미 임금수준이 높고 지불 여력이 있는 기업에서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그 재원으로 일자리 창출과 중소협력사를 위해 활용한다면 사회통합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보탬이 될 것”이라고 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권고 주체만 가리면 대기업 이익 공유제를 주창하는 더불어민주당 노동법 개정안쯤으로 착각하기에 충분하다. 임금 자제는 대기업 스스로 간절히 원하는 항목이다. 그저 민주노총 등에 가위눌린 채 끽소리를 내지 못할 뿐이다. 실제 경총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기업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2017년 기준 6097달러로 일본과 미국 대비 각각 48.6%, 21.2% 높다. 올해는 격차가 더 벌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경총은 당연히 대기업의 고임금 체계가 어떤 환경에서 비롯됐고, 또 노동시장 경직성을 어떻게 해소해야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임금 양극화와, 청년 백수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지를 따져야 했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눈감고 대기업의 도덕률과 사회통합에 대한 기여를 논하고 있다.

지난 2월, 경총의 김용근 부회장이 1년여 임기가 남았음에도 갑작스레 중도 사의를 밝혀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연말, 연초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기업에 치명상을 입히는 법안들이 줄줄이 통과되는 것을 보며 무력감과 좌절감·참담함을 느꼈다”는 게 직접적인 사퇴의 변이었다. 이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노사문제에 관한 논평이었다. 김 부회장은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1만5000명에 가까운 노조 전임자가 (일도 하지 않고)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다”며 “노동문제가 결국 국가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고용노동부’를 향해 노동정책만 하지 말고 고용정책도 하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그런데 작금의 경총 역할이 언제부터 대기업에서 고용노동부로 바뀌었나. 혹시 김 부회장의 전격 사퇴 이후부터인가? 이런 의문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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