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코인 열풍과 정부 신뢰
‘무정부주의적’ 본성이 본질적 취약점…투기·범죄수익·조세회피 수단화하면 경제 교란
제도적 틀 편입으로 ‘명목·실질가치 괴리’ 보완하고 기술 잠재력 키워 시장 신뢰 구축해야

가상화폐 열풍은 국정 운영 실패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하지만 그 무정부주의적 성격은 곧 본질적인 취약성으로 연결된다. 투기 수단화하거나 범죄 수익·조세 피난처로 활용될 수 있다. 따라서 제도적 틀로의 편입을 통해 가상화폐가 갖는 취약성을 보완하고, 국정 실패를 교훈 삼아 시장 신뢰를 구축하는 정책 대응이 중요해진다.
◇ 무정부주의적 성격
가상화폐의 시초인 비트코인은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가진 개발자가 개인 간 거래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디지털화(貨)다. 즉 2008년 경제위기를 초래하고도 책임지지 않는 금융기관들, 그리고 경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재정지출을 늘려 조세를 통해 국민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국가와 정부 정책에 대한 안티테제로 나온 것이다. 정부나 금융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자는 구상인데, 여기에는 ‘자유지상주의적 무정부주의’라는 정치적 성격이 내포돼 있다.
비트코인이 국가와 금융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가상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었던 것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거래에서 제3자 승인과 신뢰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컴퓨터가 블록체인을 형성해 비트코인 거래를 기록하고 승인해 객관적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비트코인은 2010년 피자 한 판을 주문한 거래에서 자동차 구매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결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보장과 담보 없이도 비트코인이 안정적인 화폐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보통의 화폐가 내재적 가치를 가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래·교환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은 국가가 보장하는 ‘법정화폐’이기 때문이다. ‘법적 보장 부재’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10여 년간 등락을 거듭하면서도 상승세를 유지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각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면서 그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한국의 경우 최근 급격한 부동산 가격 상승에 좌절한 20∼30대를 중심으로 가상화폐 시장에 투자가 몰리면서 폭발적 상승세를 주도하는 모양새다. 이는 가상화폐가 국가에 대한 신뢰와 반비례해 발전하는 무정부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
◇ 국가 개입의 필요성
가상화폐의 무정부주의적 성격은 그대로 취약점으로 연결된다. 지속적인 가격 상승을 기록하면서 가상화폐는 결제 수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투자, 나아가 투기 수단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적절한 타이밍에 신속하게 매수와 매도를 성사시켜 시세차익을 얻는 점이 컴퓨터에 능숙한 20∼30대 투자자에게 더 큰 매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나 주식 투자와 같은 실질적 투자 대상이 없다는 점에서 가상화폐 투자는 전통적인 투자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명목가치를 지켜낼 실질적 가치의 부재’가 본질적 취약점인 셈이다.
가상화폐의 무정부주의적 성격으로 파생되는 또 다른 약점은 밀수, 마약, 무기거래 등 국제적인 범죄 및 불법행위로 획득한 자금을 세탁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과 개인의 조세 피난처로도 사용될 수 있다. 이때 시장경제 안정성은 약화하고 국가 재정은 더욱 어렵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대두한다. 첫째, 가상화폐가 범죄 수익의 피난처로 활용되지 않도록 그 거래 정보를 국가에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다. 둘째, 가상화폐 거래소가 투자자들에게 상품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공정한 거래를 하는지 감독·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가상화폐 수익에 대한 세금 부과 필요성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특정 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 시행으로 가상화폐 거래 정보를 오는 9월부터 신고해야 한다. 또한 가상화폐의 투자에서 얻는 이익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년부터 부과할 예정이다. 이렇게 가상화폐 시장이 규제의 틀에 편입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예상된다.
◇ 제도적 편입과 시장 신뢰
그러나 정부는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를 근본적으로 보호할 수는 없고, 화폐로서의 가치를 담보해줄 수도 없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가가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를 무정부주의적 본성을 가진 가상자산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국가의 입장은 경제 주체 즉 개인 스스로 가상화폐가 일정한 가치를 담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투자했기 때문에 투자 위험에 대한 책임도 전적으로 개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럼에도 정부 정책에 아쉬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상화폐 광풍이 분 것은 부동산 정책 실패, 청년실업 등 국정 운영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가상화폐 대책과 관련한 명확하고 일관된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고 투자자 눈치를 보면서 오락가락해 왔다.
이제 정부는 가상화폐의 변화와 진화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정책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현실적인 요구에 직면해 있다. 비트코인에 이어 가상화폐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이더리움 같은 경우 블록체인을 통해 가상화폐를 거래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자동으로 거래되는 스마트계약 명령을 시행하는 기능을 갖는다. 즉 가상화폐 거래뿐만 아니라 채권·주식 등 기존 금융거래 전반에 폭발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다.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으로 금융시장의 혼란을 방지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가상화폐가 국제금융 거래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도 높다. 특히 가상화폐를 활용한 국제결제 시스템 변화에 대해 국제적 협력과 대응이 절실히 요구된다. 국가와 정부의 과제는 가상화폐를 제도적 틀로 편입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고, 블록체인 기반 기술 등 장점을 최대한 살리면서, 시장 신뢰를 구축하는 정책 대응을 하는 것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 세줄 요약
무정부주의적 성격 : 가상화폐는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자는 구상에서 나온 것. 따라서 무정부주의라는 정치적 성격이 있음. ‘법적 보장 부재’ 약점에도 불구, 비트코인은 10여 년간 상승세를 유지.
국가 개입의 필요성 : 무정부주의적 성격은 곧 본질적인 취약성임. 투기 수단화할 수 있고, 범죄 수익·조세 피난처로 활용될 수 있음. 이런 맥락에서 가상화폐 시장에 대한 국가의 규제와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 대두.
제도적 편입과 시장 신뢰 : 가상화폐 광풍은 곧 국정 운영 실패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 국가와 정부의 과제는 가상화폐를 제도적 틀로 편입시키고 시장 신뢰를 구축하는 것임.
■ 용어 설명
‘가상화폐’는 지폐 같은 실물화폐 없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공간에서 사용되는 디지털 화폐. 이에 반해 국가가 강제 통용력과 교환가치, 지불 능력 등을 보장하는 화폐를 ‘법정화폐’라 함.
여기서 ‘무정부주의적’이라는 말은 가상화폐가 국가적 권위를 부정하며, 따라서 법적인 보장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쓰인 뜻. 무정부주의적 특징은 곧 가상화폐의 본질적 취약점으로 작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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