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 (1937-2020)

덕당국선도협회 김성환 총재가 갑자기 우리 곁을 떠나고 어느새 9개월이 흘렀다. 매일 하는 새벽 수련.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당신의 힘찬 구령 소리를 듣노라면 돌아가셨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30년 세월을 함께한 사람으로서 불현듯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그의 마지막 모습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역시 도인은 다르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평시와 다름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2회나 강의를 한 것이 토요일. 그리고 이틀 뒤인 월요일 경기 용문의 덕당농원에서 83세로 우화등선(羽化登仙)하셨다. 협회 50주년 기념행사를 앞둔 시점이라 안타까움은 더했다. 직간접적으로 수십만 명의 제자를 길러냈지만, 코로나19 시국이라 가족과 몇십 명의 애제자만이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생로병사에서 ‘병’을 생략한 그의 삶. 이는 평생에 걸친 자기 수련과 국선도를 통한 이웃 사랑에 대한 하늘의 선물이다.

나는 30년 전에 그를 만났다. 40세 때였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국기 하강식 음악이 흘러나오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서 있는 것이 힘들고 몹시 피곤했다. 앞날이 구만리인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단전호흡 수련장을 찾아 나섰고 우여곡절 끝에 덕당 국선도를 만났다. 3년을 일수 찍듯 수련을 했으며 사범교육도 받았다. 사범교육 후에는 덕당 지시로 6개월간 송파경찰서에서 지도실습도 했다. 지도가 끝났을 때 덕당은 강남지원장을 통해 금일봉을 보내주셨다. 나는 그 돈으로 수련장의 회원들을 위해 난로를 구입했다. 나중에 얘기를 전해 들은 덕당은 싹수(?)가 있다고 생각하셨던지 “앞으로 허 사범에게는 수련비를 받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후 나는 덕당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협회의 각종 행사에 사회를 맡는 등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했다.

우리의 전통 양생법인 국선도의 대중화와 수련체계의 현대화를 위해 덕당은 평생을 헌신했다. 그는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해방을 맞아 귀국했다. 필자는 2019년 일본 열도를 걷고 발간한 책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를 그에게 보냈다. 이후 협회 행사에서 만났더니 “참 재미있게 읽었다. 마치 일본을 실제로 걷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생전에 일본 여행을 함께하는 기회를 만들지 못해 아쉬웠던 차에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법사(法師)로 승단했을 때 그가 지어준 이름 인봉(仁峰)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퇴임 후 불안한 심정으로 덕당농원을 찾았을 때 그는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농원의 이곳저곳을 직접 안내하는 동안 유사한 퇴직자의 사례를 들며 나를 격려해주었다.

덕당의 좌우명은 맹자의 고자 편에 나오는 말씀이다. ‘하늘이 장차 큰 임무를 내리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 이는 그의 마음을 분발시키고 참을성을 기르게 해 새로운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 말씀은 퇴임 후의 허허로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으며 어느 순간 나의 좌우명이 됐다.

오늘도 ‘승거목단 수적석천(繩鋸木斷 水滴石穿·새끼줄로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의 자세로 수련을 시작하며 하루를 연다. 지인들은 “이제 공중부양도 하시겠네요”라고 하지만 건강에 대한 확신은 가장 소중한 수련의 성과다. 내 인생 최고의 선물을 주신 덕당께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허남정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