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전승훈 기자
그래픽 = 전승훈 기자

-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
“열거되지 않았어도 경시 안돼”
사회 변화따라 확장성 열어둬
조망권·초상권 등 새 권리 추가

- ‘인간’의 천부적 권리
인간의 존엄은 기본권의 모태
인권·행복추구권과 근간 이뤄
민주주의 발전하며 확립·확대

- 기본권의 충돌·제한
국가 질서 유지 목적 제한때도
방법 적절성·제한 최소성 준수
‘과잉 금지 원칙’반드시 지켜야


‘27+α’.
기본권이란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대 헌법의 핵심적인 기본 원리에 더해 국민으로서 국가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는 각종 권리를 칭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그 조문 속에서 ‘기본권’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제10조의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보장’이란 문구를 통해 인간의 자유와 권리 등 기본권을 강조했다는 것이 헌법학자들의 해석이다. 각국의 헌법에서 기본권은 시대에 따라 범위가 확장돼왔다. 근대 입헌주의 시대 초기에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자유와 권리를 의미했지만, 시대가 흐를수록 세부적인 권리들이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적시된 권리만 27가지 = 24일 법학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현행 헌법은 10조에서 39조까지를 아우르는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국민으로서 누릴 수 있는 기본권 종류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구체적인 기본권 종류나 내용을 적시한 것만도 27개 조에 이른다.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지니는 존엄권을 비롯해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을 평등권 △타인으로부터 신체 활동을 강요받지 않을 신체의 자유 △자신의 의사를 제약 없이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사유재산의 보호를 받을 재산권 △국민의 대표자 선출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권 등이 있다. 현대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기능하기 위한 교육권이나 근로권, 국가 권력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보상받기 위한 각종 청구권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에 속한다. 더 나아가 인간으로서 삶을 향유하고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보장받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권리인 행복추구권이나 인간다운 생활권·사회보장권 등도 헌법이 보장하고 있다.

심지어 현행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개인)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 조문상에 적시된 내용에만 한정되지 않고 그 범위가 개방적이다. 헌법 37조 1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인간에게 보장돼야 할 권리가 새롭게 등장할 때마다 헌법을 개정할 수는 없는 사정을 감안한 조항이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국민은 일상생활에서 보장받아야 할 새로운 자유와 권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고층 아파트에 주거를 마련한 이들이 집 앞의 전경을 즐기겠다는 욕구에서 비롯되는 ‘조망권’도 헌법 35조가 보장하는 환경권에서 새로 파생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이 허가 없이 촬영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를 뜻하는 ‘초상권’도 인간의 존엄권에 근거하는 일반적 인격권에 포함되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이처럼 헌법상의 기본권은 천부인권을 바탕으로 근대 헌법에서부터 주요하게 다뤄진 자연적 기본권 위에 사회 발달에 따라 새로 등장하는 확장된 기본권으로 발전적 확대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권리 보장 = 그 종류와 내용이 이처럼 확대되고 있지만, 기본권에 담긴 헌법 정신의 근간은 인간이 천부적·생태적으로 지니는 존엄성을 비롯해 인권, 행복추구권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최우선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간의 존엄’은 모든 기본권의 모태이자 최고 이념으로 중요시되고 있다”며 “다른 기본권들과 동렬에 놓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인권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권리를 향유할 수 있다는 개념이며, 행복추구권은 스스로 존엄한 존재인 인간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취지다. 이 같은 정신들이 근대 입헌주의 이후 각 헌법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면서 기본권으로 심화, 발전됐다.

이 같은 기본권의 확립과 확대는 자유민주주의 발전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 민주주의 발전 과정이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확대한 역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왕족이나 귀족 같은 특수 신분을 제외한 보통 사람들은 근대 이전에는 신민이나 노예 신분에 처해 있다가 근대 이후에야 존엄성을 지닌 개인으로 인정됐다. 근대적 기본권 성립에 특히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로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영국의 존 로크(1632∼1704)가 대표적이다. 당시 철학자들은 “자연의 세계에 자연의 법칙이 있듯 인간의 사회에도 자연의 법칙이 있다”는 생각으로 ‘자연법’을 주장했다. 또 인간은 이 같은 자연법으로부터 자신에 관한 권리를 이끌어낸다고 봤다. 이런 생각이 기본권 확립으로 이어진 것이다.

근대 인권 선언이나 성문헌법에서 기본권은 더욱 구체화됐다. 근대 최초 성문헌법인 미국 헌법의 초석이 된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 1789년 프랑스 혁명 당시 발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프랑스 인권선언) 등에서 자유권, 행복추구권 등으로 구체적으로 적시되기 시작한 기본권은 이후 각종 인권선언이나 헌법의 기본권 조항에 영향을 미쳤다. 버지니아 권리장전은 1조에서 “생명과 자유의 향유” 그리고 “행복과 안전의 추구”를 언급하고 있다. 프랑스 인권선언도 4조에서 “모든 개인의 자연권 행사는 사회의 다른 구성원에게 똑같은 권리의 향유를 보장하는 이외의 제약을 갖지 아니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근대적 기본권의 기본 정신이 성립된 후 신체의 자유, 재산권, 선거권(참정권) 등 다양한 기본권이 파생돼 나왔으며, 우리 헌법에도 그런 정신이 반영돼 있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자유와 권리에 대한 관념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1910년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고, 이와 동시에 한반도의 민권(民權)도 상실됐다. 그러나 3·1 운동 등으로 국권 회복을 위한 투쟁이 진행됨과 동시에 상하이(上海)임시정부 헌법에서 자유권과 평등권, 선거권 등이 적시됐다. 해방 후 제헌 헌법에 이러한 기본권 정신이 계승됐으며, 제헌 헌법의 자유권·평등권·재산권·교육권·선거권 등의 기본권 조항은 대다수가 현행 헌법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본권의 충돌과 제한 = 헌법이 37조 1항을 통해 다양한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국민이 무한대로 기본권을 요구하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조 2항은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는 반드시 국민의 대표자들이 모인 의회를 통해 법률로 결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법률유보의 원칙’이다.

예를 들어, 기본권 가운데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고 해서 종교적 이유로 인신공양(人身供養) 등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원시적 의식을 행하는 자유까지 헌법이 보장할 수는 없다. 이를 보장할 경우 다른 이의 생명권이란 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신공양을 동반하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다가는 사람의 살해를 금지하는 법률인 형법에 의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부터 대유행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감염병예방법을 근거로 대규모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것도 법률을 통해 집회·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하는 사례로 꼽힌다. 또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나 언론 기관이 국가기관의 기밀자료에 모두 접근할 수는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법률로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 헌법은 37조 2항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단서를 두고 있다.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규정하는 대표적 원리가 ‘과잉금지 원칙’이다. 이는 국민의 기본권을 법률로 제한하더라도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 등을 준수해야 한다는 원리다. 그러나 이런 과잉금지 원칙도 실제 기본권을 제한해야 할 때는 어디까지 적용할 수 있을지 정치적 논란이 일기도 한다. 이에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는 구절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헌법재판관을 지낸 서기석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헌법의 기본 가치 가운데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 질서 유지가 양대 가치”라며 “그중에서도 기본권 보장과 수호가 더 우선적인 헌법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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