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드디어 계약했다.”
너는 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며 맥주 한 모금을 벌컥 들이켰다. 그동안 마음에 드는 집을 찾기 위해 30곳은 돌아다녔다는 너는 후련하다는 듯 웃었다. 너의 결혼은 벌써 6년 전 일이다. 서른 살. 또래 친구들 중에선 가장 이른 결혼이었다. 축하할 일이었지만, 일주일에 못해도 두 번은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던 동네 친구의 결혼은 내겐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점은 너의 신혼집이 그리 멀지 않은,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모아둔 돈 없던 서른 살의 새 신랑은 유독 집값이 저렴한 동네에 전세로 첫 보금자리를 꾸렸다. 16평 남짓의 집에서 너는 6년 동안 예쁜 딸 예지를 낳았고, 직장을 두 번 옮겼다. 분기에 한 번씩은 나와 친구들을 만나 밤늦게까지 맥주를 마시는 소소한 일탈도 빼놓지 않았다. 결혼 전만큼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거리가 멀지 않다는 생각 때문인지 결혼 후에도 너는 항상 ‘동네 친구’였다.
그랬던 네가 6년 만에 이사를 결정했다. 처가와 가까운 낯선 동네. 너는 ‘영끌’을 해 집을 자가로 샀다며 멋쩍은 듯 웃었다. 36년을 살던 동네에서는 차를 타고 한 시간가량 걸리는 지역이지만,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된 딸 예지를 돌봐줄 처가와 가까운 지역이라는 것이 선택의 배경이라고 했다. 주변에 초등학교가 가까워 학교를 다니기엔 지금 사는 곳보다 이사 갈 지역이 훨씬 좋은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대출을 갚기 위해 용돈을 더 줄이기로 했다는 말과 함께.
정말 축하할 일이라며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쳤지만, 잔에 남은 맥주만큼 아쉬움도 느껴졌다. 골목마다 어려 있는 어린 시절 추억과 여전히 남아 있는 친구들, 낯선 환경에 대한 막연한 불안, 후련함과 아쉬움, 그 사이 어딘가에 네 마음이 맞닿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너를 보면서 어른스러워졌구나 생각했다. 변화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낯선 곳으로의 이사를 앞둔 너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족을 위한 결정을 내린 너를 난 어른 같다고 생각했다. 스포츠머리로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던 중학생이 아닌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가장의 모습이 보였다면 과장일까.
요즘 어디에서나 부동산 얘기를 듣는다. 누구는 부동산이 폭등해 부자가 됐고, 누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 ‘벼락 거지’가 됐다는 등. 경제적인 손익을 따지기에 앞서 지금은 너의 ‘내 집 마련’을 축하하고 싶다. 어른스러워진 너를 조금은 질투하며, 네 딸이자 내 조카인 예지가 새 집에서 더 밝고 예쁘게 웃는 모습을 기대한다.
선민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립습니다·자랑합니다·미안합니다’ 사연 이렇게 보내주세요
△ 이메일 : phs2000@munhwa.com△ 카카오톡 : 채팅창에서 ‘돋보기’ 클릭 후 ‘문화일보’를 검색. 이후 ‘채팅하기’를 눌러 사연 전송△ QR코드 : 독자면 QR코드를 찍으면 문화일보 카카오톡 창으로 자동 연결△ 전화 : 02-3701-5261
▨ 사연 채택 시 사은품 드립니다.
채택된 사연에 대해서는 소정(원고지 1장당 5000원 상당)의 사은품(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휴대전화로 전송해 드립니다.
주요뉴스
시리즈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