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무실 전문 인테리어 업체 ‘원워크플레이스’가 최근 워싱턴주 시애틀 시내에 마련한 신개념 사무실 공간 디자인 ‘워크베터 랩’의 거실 같은 공간에 텐트가 설치돼 있다. 시애틀PI 제공
미국의 사무실 전문 인테리어 업체 ‘원워크플레이스’가 최근 워싱턴주 시애틀 시내에 마련한 신개념 사무실 공간 디자인 ‘워크베터 랩’의 거실 같은 공간에 텐트가 설치돼 있다. 시애틀PI 제공

■ 사무실 풍경 바꿔버린 코로나 팬데믹

이르면 여름부터 사무실 복귀
재택근무 익숙해진 근무 환경
일에 대한 시각도 근본적 변화
사생활 · 자율성 등 최대 보장

美 시애틀 ‘워크베터 랩’실험
英 런던엔 1인용 격리 사무실
호주선 月·金 유연근무 일상화

美 응답자 96% 원격근무 선호
“풀타임할바엔 그만둔다” 30%
포브스 “2021년 노동자의 해”


노트북을 두드리다 소파에 가서 큼지막한 쿠션에 기대 잠시 눕는다. 일하다 눈이 피로해질 때면 식물들이 놓여 있는 곳으로 가 휴식을 취한다. 잠시 유튜브를 보며 쉬고 싶을 땐 나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편하게 자리 잡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전 세계 근로자들은 이 같은 재택근무 생활에 익숙해졌을 터다. 그러나 이는 놀랍게도 이르면 여름 또는 가을부터 노동자들이 단계적으로 복귀하게 될 미국 시애틀의 사무실 모습이다. 1년 넘게 장기화한 팬데믹은 딱딱했던 사무실 풍경을 집과 같은 편안한 공간으로 바꿔놓았다. 재택근무에 익숙해져 버린 노동자들을 최대한 빨리, 많이 사무실로 복귀시켜 놓으려는 기업들의 안간힘이다.

◇사무실에 ‘거실’ 개념 들어서…사생활 보장 위한 ‘텐트 은신처’도 = 이달 초 시애틀 다운타운 한복판에 이케아 가구 전시장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들어섰다. 사무실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 ‘원워크플레이스’와 가구업체 ‘스틸케이스’가 합작해 만든 이 ‘살아 있는 실험실’(living laboratory)은 “일부는 실험실이지만, 일부는 창조적 공간”임을 표방한다. 미 인터넷 언론 시애틀PI에 따르면 ‘워크베터 랩’(WorkBetter Lab)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공간은 고용주들에게 미래의 일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랩은 5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크고 작은 그룹이 모여 공동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 개인적으로 쓰거나 프레젠테이션(PT)을 할 수 있는 공간 등 팬데믹 이전 사무실에서도 볼 수 있었던 광경과 함께 ‘거실’ 개념이 등장했다. 여기에는 안락한 고급 소파와 쿠션 여러 개가 비치돼 있다. ‘오아시스’나 ‘정원’을 테마로 한 공간에는 직원들의 정서 관리에 도움이 될 식물들이 즐비하다. 재택근무를 할 때와 같이 줌으로 영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공간도 별도로 마련됐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텐트 모양의 반밀폐형 ‘은신처’다. 직원들이 일하던 도중 ‘사생활’이나 ‘자율성’을 보장받고 싶은 순간에는 언제든지 이곳을 이용하면 된다. 사무실에 놓여 있는 모든 이동식 가구는 업무에 편한 대로 분리했다가 조립할 수 있다. 직원들은 사무실에 들어오기 전 사용하고 싶은 자리를 앱을 통해 예약할 수 있고, 사무실 곳곳에는 휴대용 전자기기 충전소가 구비됐다.

워크베터 랩 설립을 주도한 캐슬린 셀케 원워크플레이스 판매부문 부사장은 “1년 이상 재택근무를 한 후 일에 대한 직원들의 시각이 바뀌었다”며 “고용주들은 그들이 떠나기 전과 근본적으로 다른 더 나은 작업 공간을 창조해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실험실 내 환경은 생산적이면서도 편안하고, 협력적이면서도 유연하며, 살균 또는 격리 없이도 안전하고 위생적”이라고 강조했다.


◇대대적으로 개조되는 런던…호주선 유연근무 일상화 = ‘포스트 팬데믹’ 채비에 나선 건 미국뿐만 아니다. 세계 최대 금융허브 중 하나인 영국 런던 역시 팬데믹 이후 노동자들의 입맛에 맞게 사무실을 개조하는 데 여념이 없다. 사무실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쳐 1인용 격리형 사무실과 야외 사무 공간을 도입한 구글과 같은 행보다. 딜로이트그룹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런던 시내에서 개발된 면적은 450만 제곱피트로, 18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3월까지 6개월간 신규 건설 수주가 310제곱피트였고 이 중 56%가 기존 사무실을 개선하는 작업이었다. 딜로이트그룹의 부동산담당 이사 마이크 크랙넬은 “고객의 니즈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원칙을 충족하면서 직원 복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건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비교적 빨리 업무 정상화에 나선 국가들에서도 유연근무는 일상화되고 있다. 호주의 금융기술회사 브라이테는 일이 많은 날에는 직원 70∼80%가 출근하도록 하고, 일이 적은 월·금요일에는 10∼15%의 직원만 사무실에 나오도록 한다. 재택근무 선호도가 높은 금요일에는 전사적 회의나 사교 행사를 원칙적으로 계획하지 않는다.

◇‘변화의 해’ 이은 ‘노동자의 해’…일자리의 미래 키 쥔 노동자 =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20년이 ‘변화의 해’였다면 2021년은 ‘노동자의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식과 유연성으로 무장한 노동자들은 원격근무 환경에 매우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이에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의 근무시간과 점심시간, 복장까지 회사에서 일일이 규제하던 과거와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미 유연근무 구인·구직 사이트인 플렉스잡 조사에서 응답자 96%는 어떤 형태로든 원격근무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일터로 복귀시키기 위한 ‘경쟁’에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노동자들은 단순히 자신의 일정을 유연하게 관리할 수 있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재택근무를 통해 생산성이 향상된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자 80%가 ‘유연근무가 보장되는 직업을 선택하겠다’(IWG 조사)고 답했고, 60%는 ‘근무 일정을 자유롭게 조정하는 것이 생산성을 향상시킨다’(플렉스스트래티지그룹 조사)고 답했다. 30%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풀타임으로 근무할 바에야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답했고, 61%는 ‘회사가 무기한 원격근무를 허용하길 원한다’고 답했다. 실제로 팬데믹 이후 미국에선 사상 최대의 ‘프리랜서 붐’이 일어났고, 전체 노동자의 36%에 해당하는 5900만 명이 프리랜서로 일한다. 포브스는 “노동자의 힘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며 “노동계의 판도가 바뀌어 노동자가 운전대를 잡았다. 일자리의 미래는 고용주가 아닌 노동자가 직접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서우 기자 suwu@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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