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석학에게서 듣는다 - ① 데이비드 런시먼 케임브리지대 교수
네트워크 연결된 디지털 시대
정부·기업이 정보 흐름 독점
일정권한 주면서 제한도 필요
개인에게 정보통제권 더 줘야
코로나 상황 개인자유 제한 등
민주주의서도 극단조치 가능
유행 끝나도 통제 후유증 남아
민주주의 대한 좌절감 커질 듯
한국과 같은 고령사회일수록
젊은층의 정치참여 확대해야
現민주주의 대표성 위기 극복
번영·평화 속 위험요소 존재
삶의 진짜문제 해결하려 않고
‘안주하는 민주주의’ 경계해야
“대의민주주의 대표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소수의 정치인 그룹이 정치적 의사결정을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영국의 정치 석학 데이비드 런시먼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오늘날 선거로 탄생한 정당들이 민의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는 해결책에 대해 “유권자들의 의견을 선거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젊은층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이 더 드러나지 않는다고 느낀다”며 ‘젊은층의 정치 참여’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했다. 특히 그는 “한국과 같이 고령화한 사회일수록 젊은 연령층의 목소리가 정치에 더 많이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디지털 전환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는 것과 관련해 정보와 네트워크를 많이 제공하는 정부와 기업(빅테크)이 자칫 ‘21세기 빅 브러더(Big brother)’로 여겨지더라도 이는 사회에 모두 필요하며, 동시에 이들의 권한을 제한할 필요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가 쿠데타 같은 갑작스러운 붕괴를 맞을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오히려 지나치게 안정적인 상태로 민주주의가 표류(drift)하면서 국민이 처한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더 큰 위험으로 여겨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표성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민주주의에는 다양한 대표성의 위기가 있다. 하나는 유권자들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당선되는 것을 보지 못하면서 배제된 느낌을 받는 문제다. 이에 대한 한 가지 해결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선출돼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정치를 전문 직업이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인구가 고령화하는 사회에서 특히 이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자신들이 더 드러나지 않는다고 느낀다. 젊은 목소리가 더 많이 필요하다.”
―또 다른 해결책은 무엇인가.
“선거 결과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투표는 민주적으로 시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자신이 지지한 쪽이 승리하지 못해 배제됐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의견을 다른 방식으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공적 영역에 대한 무작위적인 선택, 보다 직접적인 협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고루 반영하는 시민 집회 같은 새 형태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러한 다른 형태의 표현이 단순히 공허한 활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대표성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은 정당에 관계없이 유사한 배경과 비슷한 경험을 가진 소수의 정치인 그룹이 정치적 의사 결정을 독점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체제의 국가에서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다.
“몇 년째 우리는 민주주의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고 권위주의 또는 파시즘으로 붕괴될 위험에 처한 징후를 찾는다. 많은 서방 민주주의 국가는 민주주의가 1930년대로 돌아가는 등 실패할 위험이 있다는 경고를 반복해 왔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 21세기 민주주의와 21세기 사회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리만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고 너무나 번영했으며 평화롭다. 더 큰 위험은 민주주의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표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선거가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좌절감만 키운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가 폭력이나 군사 쿠데타로 무너질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민주주의가 너무 안정돼 있고, 사람들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더 큰 위험으로 여겨야 한다.”
런시먼 교수는 많은 정치 평론가가 올해 1월 6일 미국 의회 의사당에 이뤄졌던 공격을 의도된 쿠데타처럼 분석했지만 사실은 우스꽝스러운 일에 불과했고, 민주주의에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는 “더 큰 위협은 미국 민주주의가 여전히 교착 상태에 있고, 당파 정신과 개혁 불능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법원, 부유한 기부자나 기업의 영향력과 결부돼 미국 민주주의의 기능 변화를 저해하는 장벽에 직면해 있다. 이를 개혁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변화 없이도 꽤 오래 지속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쇠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용적 권위주의가 전통적 민주주의에 비해 더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사람이 소셜 미디어 같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 어떤 면에서는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는다고 생각하면서도, 자동화, 보안 감시 및 디지털 관료주의로 인해 권한을 상실했다고 느낀다. 새로운 형태의 민주적 정치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더 잘 어울리는 또 다른 시스템을 찾아 나설 위험이 있다. 나는 이것이 종종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권위주의 정권은 적응력과 실용주의의 모습을 잘 보여주지만 그들 자신의 한계에 갇혀 있다. 독재자는 민주적 지도자보다 훨씬 더 많은 권력을 축적한다. 민주주의는 비민주주의 체제보다 위기에 더 잘 적응한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를 보다 ‘단호하게’(더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호소가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 가능성에 저항하고 더 포괄적인 민주주의를 추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또 한 가지는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 다른 시스템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점이다. 사람들이 불평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적 정치의 특징이다. 불평을 그만두는 것은 불평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불평하고 대안을 찾는 것은 민주주의의 한 부분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과 디지털 전환 시대에 민주주의를 지속하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대유행 기간에 민주 및 비민주적인 모든 정부가 비상 결정을 내리고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이것이 민주주의 자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떤 민주주의도 때로는 위기상황에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이전에 누렸던 대부분의 자유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아마도 전부는 아닐 것이다. 특히 건강과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문제에서 정부의 통제와 간섭의 후유증이 남을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에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민주주의 정치에 대한 좌절감을 키울 수 있다. 대유행으로 인해 각자 집에 갇혀 있어야 하는 개인들의 자유는 직접 제한당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납득할 만한 상황이고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개인 정보에 대해 감시가 이뤄지고 사람의 행동을 제어하기 위해 기술이 사용되는 것은 이것과 다른 문제다. 대유행에서 벗어나면 개개인에게 스스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더 주어져야 할 것이다. 단순히 다시 이동할 수 있는 자유가 허락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일이 아니다.”
―‘빅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는 ‘빅 브러더’가 될 위험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런 문제가 민주주의에 위협요소가 되는가.
“흥미롭게도 ‘빅 브러더’의 이미지는 한 세대 전에 지금보다 덜 예언적인 책(조지 오웰의 1984)에 실린 것이다. 사람들이 두려움과 위협, 이데올로기에 의해 어떻게 통제될 것인지에 대해 지금과 상당히 유사한 관점을 보여줬다. 오늘날의 우리는 정보를 통제하기가 어렵고 정보가 너무 적기보다는 너무 많으며 훨씬 더 다양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다. 정부가 기술을 사용해 서비스를 통합하고 방대한 정보의 흐름을 관리하려 할수록 개인이 무력감을 느낄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통제를 이데올로기적 충격보다는 혼란, 주의 산만, 중독으로서 경험한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세계에서 우리는 한 방향으로 정렬되기보다 분산될 가능성이 더 크다. 여기서 위험한 건 우리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는 문제다.
그는 ‘빅 브러더’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많다고 소개하면서 국가 통제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는 민간 기업도 필요하고, 민간 기업에 대한 규제를 제공할 국가도 동시에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양쪽 모두에 권한을 부여해야 하고 양쪽 다 제한해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권위주의와 사회는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대런 애스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저서 ‘좁은 회랑’(The Narrow Corridor)에서 저자들은 국가의 통제와 활기찬 시민 사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한 투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들은 이 투쟁이 늘 경쟁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결코 영구적인 합의를 이룰 수 없다고 한다. 각자 서로의 힘을 제한하거나 상대에 저항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경쟁은 마찰과 반대뿐만 아니라 역동성과 안정성도 동반한다. 권위와 사회가 항상 서로를 밀어낸다는 점에서 이들 사이의 균형은 항상 불안정할 것이다. 국가는 시민 사회가 너무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반대로 시민 사회는 국가가 너무 많은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인식할 때 필요한 것은 힘의 배분(distribution)이라는 신호다.”
런시먼 교수는 “국가나 시민 사회가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권력의 양에 만족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불안과 불평, 참을성 부족 등을 포함하는 불편은 민주주의가 기능하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공간이 협소해 너무 제한적이라고 여겨지는 ‘좁은 복도’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면서 “균형이 환상에 불과하며 민주적 정치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에 놓였다는 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발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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