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21일 한·미 정상회담이 문재인 대통령의 자평대로 과연 최고의 성과를 올린 비즈니스 회담이었는가. 그 성과를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외교는 아태지역의 높은 수준의 표준·경제·기술·가치동맹에 전혀 참여하지 못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는 느슨한 형태의 경제 협의체에 중국과 함께 참여한 것을 유일한 성과로 내세우는 상황이다. 문 정부의 친중 또는 중립화 외교 노선은 점점 국제적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됐고, 국내적으로도 백신 부족 현상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게 됐다. 정권 재창출이 절대적 과제인 정권으로서는 미국 주도 가치동맹에 합류하는 시그널이라도 보내는 방법밖엔 대안이 없게 됐다.

시그널을 받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번 회담을 통해 한국을 가치동맹에 편입시키기 위한 구체적 조치들을 한꺼번에 쏟아내 이를 한국이 수용하게 하는 패키지딜을 성사시켰다.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외교 방향이 올바른 방향으로 리세팅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서둘러 미측의 패키지딜을 수용한 데 따른 부작용은 고스란히 비즈니스에 떠넘겨지게 됐다. 기후변화 문제에서 국내 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탄소중립 목표치가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떠안겨졌다. 탈원전 기조에 대한 비난을 줄이기 위해 한·미 간 해외 원전 수출 협력이 전격 합의되긴 했으나, 국내 탈원전 정책의 기조 아래서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한다는 건 산업계에 지나친 부담만 준다.

백신 관련 합의 내용은 협상의 레버리지를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한 관료주의가 낳은 참사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내 제조업의 사활과 국가안보 문제가 걸린 반도체 자급률을 대폭 올리기 위한 노력을 정권 차원에서 기울이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업체 모시기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번 회담 때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 기업이 44조 원이나 되는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어마어마한 대미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는 협상 자산이었다. 공격용 아파치 헬기 구입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분 등을 모두 합치면 50조 원 규모의 예산 및 민간 투자액을 미국 달래기에 쏟아부은 셈이다.

그러고도 이번 정상회담에서 얻어낸 코로나19 백신은 국군용 55만 회분에 불과하다. 게다가 모더나가 한국을 백신 위탁생산국으로 정한 것을 두고 글로벌 백신 허브로 한국을 도약시킨 쾌거라 선전하고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노바백스, 스푸트니크-V 백신 등이 이미 위탁생산 중인 한국에 모더나가 뒤늦게 조인한 게 진실이다. 이런 비즈니스적 필연을 단지 정상회담을 계기로 공표해 놓고, 그것이 마치 정상회담의 성과이고 한국을 백신 제조의 글로벌 허브로 탄생시킨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앞으로 44조 원 대미 투자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투자 인센티브에 대한 후속 협상이 필요하다. 각종 세금 혜택과 연구·개발(R&D) 지원 규모가 관건이다. 그런데 정상회담 차원에서 44조 원 규모로 투자를 못 박아 버렸으니, 후속 인센티브 관련 협상에서 우리 기업들에 불리하게 돼 버렸다. 기업들의 노력에 숟가락을 얹었으면, 그냥 삼성바이오 등 우리나라 바이오 기업의 발전상을 축하하며 격려해 주는 게 국가 지도자의 도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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