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바이든 회담 외양은 합격점
北비핵화 전략 본질은 깜깜이
공허한 협상의 악순환 막아야
외교장관의 인식 오류도 심각
北 비핵지대 실체 제대로 알고
망가진 동맹 울타리 수선해야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는 외교의 일반적 명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지난 5·21 워싱턴 정상회담은 대체로 합격선을 통과했다고 본다. 지난 4년간 약해진 한·미 동맹의 질과 폭을 강화했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높은 우선순위를 재확인했다. 대만해협의 안정,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북한 인권 개선, 쿼드(Quad) 등 언급은 현 정부의 종래 입장에 비춰볼 때 표변이라 할 만큼 놀랍다. 중국은 내정간섭이며 불장난하지 말라고 반발했지만, 당장 추가적인 긴장 조성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공동성명을 허사로 만들거나 중국의 압박에 변명과 눈치 보기로 일관하지 말고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된 내용에 충실을 기하며 약한 고리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을 북한 비핵화 추진 차원에서 본다면, 우선 지난 4월 완료된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 내용의 윤곽이 이번에 더 구체적으로 발표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은 전략적 인내와 빅딜 타협 사이의 중간에서, 잘 조율되고 실용적인 어프로치를 전문 협상팀이 보텀업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방법론이 전부다. 전략 노출 방지 의도인지는 모르나 예측 가능성 저하로 인한 깜깜한 불안감을 수반한다. 미국의 대북특별대표로 임명된 성 김 대사가 분주히 움직이겠지만 북한을 조만간 협상 테이블로 데려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권을 거론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을 확인한 데서 보듯이 미국이 북한의 제재 완화 요구를 성큼 수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불가(佛家)의 얘기대로, 김정은이 백정의 칼을 내려놓고 단번에 부처가 되기를 바랄 수도 없다. 따라서 성 김 대사는 전략적 목표 달성보다 목전의 사소한 진전에만 매달리는 근시안적 협상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자칫 알맹이 없는 과정의 끝없는 연속과 북한의 벼랑 끝 도발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도 있다. 비핵화 용어 사용과 관련, 한국의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북한 비핵화’ 간에도 그동안 입장 차이가 있었으나, 이번 회담으로 적어도 한·미 간에는(미·일 간의 ‘북한 비핵화’ 사용과는 다르게)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로 결론이 났다. 실질 문제가 아닌 분야에서 마찰을 피하려는 미측 고려의 산물로 보인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외교장관은 방미 중 미국 PBS 방송 인터뷰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1992년 남북 총리 간에 서명, 발효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중 제1항인 핵무기의 시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 등 8가지 행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고 북한도 이러한 정의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런데 1992년 당시 북한은 핵 개발의 초기 단계였고, 남쪽에서는 미군의 핵무기가 완전히 철수된 직후였다. 따라서 앞의 3가지, 즉 시험·제조·생산은 북한이 하지 말아야 할 의무사항이었으며, 나머지 5가지, 즉 접수·보유·저장·배비·사용은 우리 측에 의해 이미 완료된 것이다. 양측은 추후 핵통제 공동위원회를 통해 이를 검증한다고 했으나 북한은 이 모든 것을 철저히 위반, 2006년 1차 핵실험 후 무기를 제조·생산해 오늘에 이른바, 지금 상황에서 비핵화 공동선언은 완전히 사문화된 것이다.
1994년 미·북 간 제네바 합의에서든, 2003∼2008년 사이의 6자회담에서든 북한의 비핵화가 주요 의제였다. 따라서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定義)는 한국에 미국의 핵무기가 접수·배비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근본적으로 북한이 핵물질, 핵무기 및 핵 계획을 포기하고 이를 객관적·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을 말한다. 외교장관은 제발 이 기회에 북한의 비핵지대화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정확히 재인식해야 한다.
이제 임기를 11개월 남짓 남겨둔 문재인 정부가 이번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어떻게 정책에 접목해 나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우선, 망가진 울타리 수선이 시급하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당장 재개해야 한다. 과욕은 금물이다. 길지 않은 잔여 임기 내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 노력은 제쳐 둔 채 성과에만 급급해 남북 경제협력과 정상회담 성사에만 골몰하고 한·미 동맹과 한·미·일 3국 공조를 약화시키는 실패한 과거 패턴으로 돌아간다면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는 단숨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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