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는 나무의 생장 연도를 추정하는 근거가 될 뿐 아니라 나무가 사는 동안 거쳐 온 환경의 변화와 사건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나이테는 나무의 생장 연도를 추정하는 근거가 될 뿐 아니라 나무가 사는 동안 거쳐 온 환경의 변화와 사건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

■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발레리 트루에 지음│조은영 옮김│부키

체르노빌참사 영향받은 나무
방사선-생장 관련 연구 기회로

재해발생땐 좁아지는 나이테로
당시 해적 활동까지 파악 가능

나무로 생태·기후·인류사 연구
‘연륜연대學’의 중요성 강조


소싯적,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누빈 서울 변두리 봉화산에는 밑동만 남은 나무가 제법 많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은 나이테를 가리키며 저 잘났다는 듯 “이 나무는 몇 살쯤 됐겠는데…”라고 큰소리를 쳤다. 나이테가 나무의 수령(樹齡), 즉 나무의 나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무의 나이를 연구하는 학문이 있다는 사실은, 짐작건대 처음 듣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이테의 생장 연도를 부여하고 나이테에 저장된 다양한 환경 정보를 밝히는 학문”인 연륜연대학(年輪年代學, dendrochronology)이 바로 그것이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의 저자 발레리 트루에는 자신을 “나이테를 세는 과학자”로 소개하는 연륜연대학자이자 연륜기후학자다. 그는 “나이테를 이용해 과거의 기후를 연구하고 기후가 생태계와 인간계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한다. 저자는 연륜연대학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연륜연대학은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역사 사이의 상호작용을 밝힐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약 100년 전,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나이테 과학이 처음 탄생한 이후로 죽 그랬다.”

연륜연대학자라고 해서 나이테만 뚫어지게 보는 건 아니다. “실력 있는 감정가”라면 외모만으로도 나무의 수령을 가늠할 수 있다. 실제로 오래된 나무들은 “나무줄기가 꼭대기로 올라가도 가늘어지지 않는 기둥 형태”이며 “큰 뿌리가 밖으로 노출”된 경우가 많다. 어떤 노목은 “꽈배기처럼 자라면서 수피가 가늘고 긴 형태”를 보인다. 신참들은 노목을 찾겠다며 숲에 있는 나무에 모조리 구멍을 뚫다가 제풀에 지쳐버린다. 1964년 노스캐롤라이나대 지리학과 대학원생 돈 커리도 그런 유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빙하 연구의 일환으로 네바다 동부 브리슬콘소나무의 연대 측정과 분석에 참여했다. 그가 그레이트베이슨 국립공원 휠러파크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수령 4862년인, 현대 산악인들이 ‘프로메테우스’라고 이름 붙인 나무였다.

“비극적인 사실”은 프로메테우스의 나이가 이 나무가 잘려나간 다음 밝혀졌다는 점이다. 커리는 산림청의 허가까지 받아 나무를 베었고, 호텔방에서 나이테를 세다가 멘붕에 빠졌다. 자신이 “방금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았던 나무를 죽였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를 “살인자”라고 불렀고, 커리는 죄책감 때문에 결국 전공까지 바꾸어야만 했다. 2012년 애리조나대 나이테 연구소가 커리가 발견한 브리슬콘소나무보다 더 오래 산 브리슬콘소나무를 찾아냈다. 수령은 무려 5062년. 보호를 위해 “나무의 정체와 정확한 위치는 비밀”이다. 커리가 이 일로 죄책감을 떨쳤는지는 알 수 없다.

연륜연대학은 전반적인 과거의 기후와 허리케인 같은 극한 기후뿐 아니라 지진이나 화산 폭발, 심지어 방사능 유출의 막대한 피해 등을 연구하는 데도 유용하다. 1986년 4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핵 발전소 참사가 일어났다. 방사능 낙진 때문에 반경 2.5㎞ 안에 있는 나무들이 모두 적갈색을 띠고 죽었다. 일명 “붉은 숲”이라고 불린 땅을 불도저로 밀고 모래를 두껍게 깔았다. 핵 발전소에서 더 멀리 떨어진 나무들도 “방사선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붉은 숲처럼 밀리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나무의 생장에 대한 방사선의 역할을 직접 연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연륜연대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나이테와 해적선을 연결한 흥미로운 이야기도 등장한다. 저자 연구팀 일행은 나이테와 허리케인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는데, 나이테가 좁은 해에는 허리케인 발생 빈도가 높았다. 가뭄, 혹서, 홍수, 토네이도, 허리케인 등 극한의 날씨는 나이테에 기록된다.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나뭇잎을 뜯어내면 수관층의 손상”이 일어나고 나이테도 영향을 받는다. 나뭇잎이 대량 소실되면 광합성 능력을 잃을 것이고, 결국 “나이테를 생산할 에너지”마저 부족하기 때문에 나이테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반면 “허리케인이 거의 발생하지 않은 마운더 극소기”의 나이테는 넓었다. 저자는 마운더 극소기가 “역사가들이 해적의 황금기라 부른 시기와도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1650∼1720년 사이, 카리브해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해적선과 사략선이 금과 보석, 설탕을 잔뜩 실은 스페인 선박을 주로 공격했다. “마운더 극소기의 허리케인과 난파선의 부재가 해적 현상금을 높이고 해적들이 약탈할 동기를 증가시켰을 것이다. 바다에서 폭풍이 덜 몰아치면서 스페인 선박이 난파하는 일도 줄어들었지만, 동시에 해적들이 활개 치는 배경도 되었다.”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나이테, 즉 나무의 과거를 읽어냄과 동시에 역사 이래 인간의 자취까지 조명한다. 과학의 범주에만 국한하지 않고 그것에 얽힌 인간 삶의 역사와 맥락을 더듬는 저자의 노력이 비교적 충실한 편이다. 340쪽, 1만8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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