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의 ‘기타기타 사건부’

내가 아는 특이한 직업에 관해 얘기해 볼까 한다. 몇 해 전 독일에 갔을 때 어떤 남자와 만난 적이 있다. 미리 약속을 한 건 아니고 우연히 지나다가 마주친 거니까 이름도 모르고 성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을 하며 먹고사는지는 한눈에 파악했다. 남자는 아침마다 쾰른 대성당 앞 광장으로 출근한다. 그러고는 광장 바닥에 수십 개 나라의 국기를 하나씩 그려 나간다. 솜씨가 뛰어나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금방 모이는데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자기 나라 국기 그림 위에 동전을 올려놓는 광경을 보며 나는 감탄하고 말았다. 누군가 동전을 놓으면 남자는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인다. 해 질 무렵이 되면 그림을 몽땅 지우고 유유히 퇴근. 광장 관리자의 말에 따르면 매일매일 그 일을 반복하는 모양이다. 실로 세계적 여행지에 걸맞은 직업 아닌가.

그런가 하면 일본 에도시대 때는 ‘문고상’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여기서 ‘문고’란 책이나 문서 등을 넣는 두꺼운 종이상자를 뜻한다. 당시 문고상들은 대바구니 위에 종이를 붙이고 전체를 칠하거나 그림을 그려서 만든 문고를 수십 개씩 등에 지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팔았다. ‘책’이 아니라 ‘책을 넣어 보관하는 상자’를 파는 직업이 있었다는 건 아마 일본인들도 대부분 모를 텐데, 오랫동안 에도시대에 관해 공부해 온 작가 미야베 미유키(宮部みゆき)는 ‘오오에도 복원 도감’이라는 문헌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특이한 직업이니 새로운 작품에 써먹어야겠다” 생각하다가, (1) 아이가 사라진 건 유괴가 아니라 주사위를 잘못 던진 운명에 따라 염라대왕에게 끌려간 거니까 상관하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부모, (2) 상처한 전 남편과 다시 부부가 되기 위해 환생했다고 주장하는 묘령의 여인에 관한 기담에 문고상 기타 씨를 등장시킨 소설이 ‘기타기타 사건부’이다.

이 작품에는 ‘오캇피키’라는 특이한 직업이 등장한다. 에도시대는 전국시대와 메이지 유신이라는 양대 전란 사이에 있던 평화로운 시기여서 각 자치구에 경찰 업무를 담당한 관리가 극히 적었다. 이 때문에 관리들은 사비를 들여 (‘뱀의 길은 뱀이 안다’는 속담처럼) 범죄자의 생리를 잘 아는 전직 범죄자들을 오캇피키, 즉 개인 정보원으로 고용했다. 다만 문고상 기타 씨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는 직업적 특성 덕분에 오캇피키의 역할을 동시에 맡아, 본의 아니게 기이한 수수께끼를 풀고 괴담을 좇게 된다. 그런데 왜 작가는 하고많은 직업 가운데 문고상을 주인공으로 낙점했을까. 그건 아마도 각종 정보를 인터넷으로 습득하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책이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된 시대에, 상자에 넣어서 보관해야 했을 만큼 그걸 귀하게 여기던 시절도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닐지. 그러니 부디 힘내시길, 문고상 기타 씨.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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