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국내외 잇단 패션쇼·전시회 김혜순 한복 명인
순천·서울·브라질 등서 열려
전통 옷 현대적 재해석 통해
젊은이도 자유롭게 입었으면
중국 ‘한복 공정’질문 많은데
묻는 것 자체가 자존심 상해
그 집 입구 벽면에 한복 입은 여인의 뒷모습 사진이 있었다. 드라마 ‘황진이’의 주인공 역을 한 배우 하지원이었다. 은근하면서도 강렬하게 한복(韓服)의 아름다움을 호소하는 뒷모습이었다.
서울 역삼동 ‘예정(藝丁) 김혜순 한복’에서였다. 지난 24일 이곳을 찾았을 때, 김혜순(64) 디자이너는 젊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원광디지털대 한국복식학과 제자들이라고 했다. “15년 전에 학과를 만들었어요. 전국에 퍼져 있는 제자들에게 한복 현대화의 희망을 전하는 것이 제 소임이지요.”
그는 영화 ‘서편제’ ‘천년학’ ‘광해’와 드라마 ‘토지’ ‘황진이’ 등의 한복 의상을 제작한 명인이다. 그동안 세계 25개 도시에서 50회 이상의 패션쇼와 전시를 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2011년)과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2013, 2015년)에서 초청 패션쇼를 펼치기도 했다.

그는 올해 여름과 가을에도 국내외에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과시한다. 우선 7월 말에 브라질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패션쇼를 한다. “감염병 사태로 사람은 못 가니까, 옷만 보내서 브라질 모델들에게 입히는 형식이에요.”
8월엔 순천만정원에서 ‘2021 동아시아문화도시’ 개막행사 패션쇼를 주관한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시회도 관계자들과 논의하고 있는데 9월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10월엔 순천시가 마련한 ‘김혜순의 집’에서 규방 공예 전시와 공연을 함께 펼친다.
“바쁜 일정이지요? (웃음) 전통 옷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자유롭게 입을 수 있다는 것을 더 널리 알리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쉴 수가 없는 거죠.”
부드러우면서도 결곡한 음성이었다. 그는 지난 2월부터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한복 전시회 ‘다이얼로그, 상춘곡(Dialogue, 賞春曲)’을 열었다. 당초 이달 9일까지 예정했으나 관람객 요청으로 31일까지 연장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김병종미술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선정한 ‘한국 관광 100선’에 들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이 미술관에서 이례적으로 한복 전시회를 하면서 그림 속에서 생명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마네킹 안에 LED 조명을 밝힌 것은 현대적 감각으로 젊은 관객들과 소통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는 관객들이 국내외 지인들과 SNS를 통해 전시회에 대한 감동을 나누는 것을 확인하며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미술관을 운영하는 남원시 관계자들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와서 마치 전쟁 난 것 같다”고 했다는 것도 자랑스럽게 전했다.
그 자부심에 소명 의식이 깃들었음을 안 것은, 그에게서 외국 전시회 때의 이야기들을 자세히 듣고 난 후였다. “정말 이런 옷을 너희 조상들이 입었단 말이냐.” 해외 패션 관계자들은 그에게 이런 의문을 표시했다. 메트로폴리탄과 루브르에서 ‘왕의 복식’ ‘조선의 왕비’를 테마로 전시회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우리에 대해서 그렇게 무지한 게 너무 분하더군요. 그래서 프랑스 패션 관계자들이 전시회에서 사용한 음악(‘황진이’ OST)이 너무 좋다며 선물해달라고 요청하는데도 주지 않고 그냥 와 버렸어요(웃음).”
그는 그런 편견과 싸우며 세계 속에 우리 옷의 아름다움을 각인시켜왔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의상 담당 퍼트리샤 필드가 자기 집으로 그를 초대해서 한복에 대한 ‘특별 강의’를 들었던 것은, 그 아름다움에 감복했기 때문이었다. 벨기에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은 김혜순을 패션쇼에 초청하고 한복에서 영감 받은 옷을 등장시켰다.
그에게 “빼어난 한복 모델로 누구를 꼽느냐”고 물었더니, “이보희, 김미숙, 채시라, 오연수 등 완숙한 중견 배우들이 우리 옷을 잘 소화한다”고 답했다. 파리에서 왕비를 주제로 쇼를 할 때는 이하늬 배우와 동행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KBS 탤런트였던 외삼촌 덕분에 연예인들과 가깝게 지냈어요.”
그는 배우이자 한복인형제작자였던 외삼촌 허영(1947∼2000)의 권유로 어린 시절부터 한복 제작을 배우며 현장에서 실무를 익혔다. 그가 자신의 브랜드 앞에 붙인 ‘예정’은 허영의 호다.
그는 실무와 이론을 겸비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유희경 이화여대 교수에게서 우리 복식사를 20여 년 배웠다.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책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는 그 공부의 결실이다.
“최근 여러 매체에서 중국이 한복을 자기 것이라고 우기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오더군요. 그걸 묻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어요. 우리 것을 우리가 사랑하고 존중하며 착실히 발전시켜 나가면 되는 것이지, 남이 억지소리를 하는 것에 반응할 필요가 있나요?”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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