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 4학년 담임이셨던 이명학 선생님

스승은 부모와 일체라 여긴 선인들의 지혜 덕분일까. 가정의 달 5월 한중간에 스승의 날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이날 하루만이라도 찾아뵙고 싶은 은사님이 한 분쯤은 계실 것이다. 가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담임을 맡으셨던 모든 은사님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 분 한 분 기억하는 버릇(?) 덕분에 모든 분의 존함을 잊지 않고 있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들은 자식들의 담임선생님만 뵈면 이마가 땅에 닿을 듯 조아리며, 때려서라도 자기 자식을 사람 만들어 달라고 애원하다시피 하셨다. 가벼운 체벌만 해도 제자가 선생님을 고발하고, 부모는 물러가라며 피켓 들고 시위하는, 요즘 선생님들의 위상과는 사뭇 달랐다.

나도 성공한 제자가 돼 선생님을 떳떳하게 찾아뵙고 싶었지만, 현실은 바람과 전혀 달랐다. 그래도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두 분의 선생님을 찾아뵙는 행복을 누리고 있다. 한 분은 나와 같은 고향에 살고 계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이셨던 이명학 선생님이시고, 또 한 분은 예순이 넘는 나이에 ‘시조시인’이란 이름을 갖게 해 주신 시조시인 나순옥 선생님이시다.

한정된 지면에 두 분의 이야기를 다 쓸 자신은 없고, 제목의 주인공이신 이명학 선생님에 관한 아름다운 일화를 소개하고, 내가 왜 선생님을 존경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에 대한 공감을 나눠보고자 한다.

분기마다 한 번씩 내는 20원의 사친회비(지금의 육성회비)조차도 버거웠던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 어느 봄날이었다. 체육 시간을 마치고 교실로 돌아온 우리는 비명에 가까운 한 친구의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양철 필통 안에 있던 돈 30원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평소 친구들과 다른 옷차림으로 씀씀이 또한 남달라 부러움과 동시에 질시의 대상이 됐던 친구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선생님은 별다른 말씀 없이 반장을 불러 뒷동산에 가서 솔잎을 한 움큼 뽑아오라고 했다. 뽑아온 솔잎을 똑같은 길이로 자른 후, 선생님께선 모든 아이의 손을 손바닥이 보이도록 책상 위에 올려놓게 하고 자그마한 손바닥에 솔잎 한 개씩을 놓으면서 “자, 눈을 감고 꼭 쥐고 있어야 한다. 돈을 가져간 녀석의 솔잎은 곧 두 배로 클 거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교실 안은 숨 막힐 듯 적막이 흘렀다. 나는 혹시나 잘못돼 내 솔잎이 자라면 어떡하지? 걱정되는 마음에 슬며시 실눈을 뜨고 손을 펴 확인했다. 아마 모든 친구가 그러했으리!

잠시 후 눈을 감은 채 손을 편 아이들의 솔잎을 확인하신 선생님께선 각자의 솔잎을 반으로 자르게 해 어린 제자들을 품으셨다. 쉬는 시간이 되자 선생님께선 교무실 문 앞에서 나를 손짓해 부르시더니,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이란 친구를 선생님께 오라 하라고 이르셨다. 말씀대로 그 친구에게 전하고 나서 다음 날 돈 30원이 제 주인을 찾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동시에 나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란 친구가 선생님의 말씀처럼 진짜로 돈 가져간 사람의 솔잎이 두 배로 자라는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어 솔잎을 반으로 잘라버렸던 것이다. 돈을 가져간 친구를 확인한 후 선생님께선 어린 제자의 인격까지 생각해 모든 제자의 솔잎을 자르게 했던 것이다.

5월의 보리 내음 묻어온 솔바람만큼이나 맑고 순진했던 그 어린 시절의 친구들은 지금도 선생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솔잎을 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어린 제자들의 마음까지 헤아리신 선생님의 크신 사랑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비밀은 지금도 내 가슴에 솔잎처럼 싱그럽고 향긋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데….

시조시인 김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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