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용 산업부 차장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눈길을 끌었던 장면 중 하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 도중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 등 6명의 한국 기업인을 일으켜 세운 뒤 박수를 유도한 순간이다. “250억 달러(한국 측은 44조 원(394억 달러)으로 발표) 투자를 삼성, SK, 현대, LG 등에서 약속해줬다”며 “Thank you”를 세 차례 연발했다. 한 달 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홀대받았다는 시각을 보였던 일본 언론이 이를 낚아챘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등은 “한·미 공동성명에 한국 측의 요망이 폭넓게 반영됐다”면서 “한국 기업이 40조 원대 대미 투자를 한 대가”라고 밝혔다. 2019년 4월 미·일 정상회담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일본 기업이 미국에 230억 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혀 환대와 선물을 받았는데 2년 만에 상황이 묘하게 바뀐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환대를 계기로 한·미 관계가 매끄럽게 복원됐는지는 불명확하지만, 두 가지 사실은 명확해졌다. 첫째 우리 기업이 움직이면 세계 최강 미국의 마음도 살 수 있다는 점, 둘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는 문 대통령이 우리 기업에 세게 빚을 졌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전임 대통령들도 기업들로부터 종종 도움을 받았다. 사실 글로벌 경제 전쟁터에선 인맥과 구매력을 앞세운 세계 일류 기업의 도움을 받으면 어렵지 않게 해결되는 일들이 있다. 국내에선 대기업들을 구박하다가도 해외 순방만 나가면 곳곳에 걸린 대기업 광고판을 보며 자부심과 애국심을 느끼게 되는 것도 대통령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5월 러시아를 방문해 “기업이 나라다”라고 고백했다. 필리핀에선 “(해외 순방에서) 한국 상품 사진이 있는 광고판을 볼 때 기분이 좋다. 그(광고판) 밑에 박혀 있는 한국 기업 이름을 보면 형님을 만날 때보다 더 반갑다”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노동계는 노 전 대통령이 배신했다고 낙인찍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굴하지 않고 대통령으로서의 책임감을 담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한·미 FTA는 노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대통령과 정부를 돕는다는 것은 경영상 리스크가 크다. 기업에 좋은 결과로만 이어지지도 않았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위해 골프장을 내줬다가 중국 시장을 잃은 롯데그룹의 피해는 아직도 보상받을 길이 없다. 정치가 기업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한국에서 서슬 퍼런 대통령의 협박을 거절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세계 굴지 기업 50대 초반의 젊은 총수를 감방에 계속 가둬두는 것도 우리의 현실이자 낭비다. 이제 기업에 진 빚은 기업과 기업인이 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으로 갚아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과는 결국 대통령 본인의 업적이 된다. 노 전 대통령처럼 강성 지지층과 반(反)기업의 울타리를 과감히 벗어나는 결단 하나가 ‘용서와 화해의 리더십으로 코로나19의 위기를 극복했다’는 역사의 평가로 되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김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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