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고문

‘그는 조각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음악도, 영화도, 소설도 잘 모른다. 그러니 조각가 외의 사람들과는 대화거리가 거의 없다. 그의 머릿속은 온통 조각으로만 가득 차 있다.’ 미술사학자인 고종희 한양여대 교수가 자신의 배우자인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돌 조각가’ 한진섭(65)에 대해 쓴 글의 한 대목이다. 이런 표현도 있다. ‘전통적인 석조(石彫)에서 출발해 외길을 걸어온 그가 선택한 작업 방식은 수천 년 전에도 존재했던 망치와 정을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것으로, 성실함의 DNA를 뼛속까지 타고난 그는 기교가 드러나는 것을 경계하는 깐깐한 장인(匠人)이다.’

미술평론가 오유근은 한진섭의 예술세계를 이렇게도 묘사했다. ‘사방천지가 돌이다. 오직 돌뿐이다. 대리석·화강암·현무암·사암 등 돌의 밭이다. 그 밭을 가꾸는 작가 또한 돌로 시작해, 돌 이야기로 마침표를 찍는다. 작가와 돌은 응전과 교감으로 서로 닮아 있고, 작가가 침묵하면 돌이 작가를 대변한다. 한진섭의 돌들은 바로 그의 예술·삶·역사를 가리킨다는 생각이다.’ 한진섭을 국내외 평론가들이 일컫는 표현은 이 밖에도 ‘차가운 돌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가’ ‘채움과 비움의 조형 원리’ ‘기하학적이고 간결한 조형미’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의 조각’ ‘해학과 유머의 예술’ ‘기뻐하고, 고통받으며, 때로는 생각에 잠긴 풍자적 우리 자신의 모습’ 등이다. 홍익대 조소과 졸업 후 고등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던 그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아카데미로 훌쩍 유학을 떠난 것이 1981년이었다. 당시를 그는 회고하며 “나는 유학 전에도 줄곧 대리석이나 화강암을 다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돌이 모두 모이는 데가 이상적인 곳이었다”고 한다. 그런 환경에서, 피사국립대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시야를 더 깊고 넓게 하며, 이런저런 국제적인 상도 받고, 확고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가 서울 강동구청과 협약을 맺고, 작품 50여 점을 일단 10년 동안 무상 임대한 뒤 교체·추가하면서 더 연장할 수도 있게 한 ‘허브조각공원’이 강동구 둔촌동 일자산 근린공원 안에서 오는 6월 중에 문을 연다. 인간애(人間愛)를 품은 돌 조각의 아름다움에 맘껏 젖어들 수 있는 자연 속 공간이 참으로 반갑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