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21) 誤기억과 가짜뉴스
주관적 경험의 하나인 기억, 허위정보·암시·맥락 개입 따라 잘못된 확신 흔해… 언제든지 틀릴 가능성 높아
이전에 본 적 있으면 가짜뉴스도 ‘윤리적 문제 없을 것’ 판단… 정보 가공과정·정확성에 관심 기울여야
간단한 기억 실험을 한번 해 보자. 괄호 안에 여러 단어를 제시할 텐데, 이 단어들을 하나씩 집중해서 천천히 읽어보길 바란다. 그러고 나서 나오는 기억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서는 괄호 안의 단어를 가리고 대답해 보길 바란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기억 실험을 할 수 있다. 준비됐다면 다음 괄호 안의 단어를 하나씩 읽어보라.
<해수욕장, 모래, 잠수, 원양, 수영, 파도, 바람, 어선, 물결, 해군, 어부, 해양>
다 읽었다면 이제 단어들을 다시 보지 말고, 당신의 현재 기억에만 의존해서 이 칼럼의 맨 마지막에 있는 괄호 안의 단어 가운데 조금 전 본인이 봤다고 확신할 수 있는 단어를 1개 이상 골라보길 바란다.
당신이 고른 단어들이 조금 전 읽었던 단어들 중에 있는가? ‘바람’ ‘모래’ ‘수영’을 모두 골랐다면 당신의 기억은 매우 정확하다. 필자가 수업시간에 대학생들에게 같은 실험을 해 보면, 대부분 한두 개의 정답을 맞힌다.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적지 않은 수의 학생이 목록에 없던 ‘바다’라는 단어를 본인이 읽었다고 고른다는 점이다. 아마도 당신 역시 ‘바다’를 봤다고 착각했을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자신의 기억에 대해 확신하는지 추가로 물었을 때도 전체 학생 중 약 10%가 ‘바다’라는 단어에 대해 높은 확신이 있고, 분명히 봤다고 대답하며, 심지어 어떤 학생은 제시된 4개의 단어 가운데 다른 단어보다 ‘바다’라는 단어가 가장 확실하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왜 ‘바다’라는 단어를 마치 정말 본 것처럼 기억할까? 독자들도 눈치챘겠지만, 앞의 괄호 안에 있는 단어들은 모두 바다와 관련됐다. 이 단어들이 바다를 암시해 목록에 없던 ‘바다’라는 단어가 잘못 기억된 것이다. 이처럼 어떤 암시나 맥락을 통해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것으로 잘못 기억하는 것을 오기억(誤記憶·False memory·‘허위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함)이라고 한다.
우리의 기억은, 들은 것과 본 것을 그대로 저장했다가 재생하는 녹음기나 카메라가 아니다. 외부 정보들이 우리 감각기관에 입력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보고 싶은 것·듣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변형하고, 압축하거나 정교화하기도 한다. 정보들이 저장(기억)된 이후에도 새로운 정보들에 의해 저장된 정보가 다른 정보로 바뀌거나 혹은 심지어 없던 것이 새로 생기기도 한다. ‘바다’란 단어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마치 봤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우리 중에 누군가는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거나 자신이 한 것과 다르게 기억할 수도 있다. 이런 오기억은 자신의 일화로 구성된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자신을 미화시키거나 혹은 자신이 피해를 감내했다고 잘못 기억할 수도 있다.
만일 당신이 어떤 범죄 현장에 우연히 있었고, 물리적 증거도 전혀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당신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만일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내세울 증거도 없고, 확신에 찬 그 목격자를 판사나 배심원들이 믿는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목격자가 유일한 증거인 사건이 한 해에 수만 건이고, 이 중 수천 건(5∼10%)의 사건에서 목격자가 실제와 다른 잘못된 증언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나라 상황도 비슷할 것이다. 목격자의 말만 듣고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가 나중에 실제 범인이 잡히는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방화 살인사건을 다루면서 유일한 목격자가 유치원생 나이의 어린이였고, 그 아이가 방화를 한 사람이 동네 가게 아저씨라고 증언해 1심과 2심에서 유무죄가 엇갈린 사건을 방영했다. 목격자 증언 이외에 다른 물리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TV 프로그램에서는 아동 정신과 전문의에게 이 아동이 거짓말을 하는지 물었는데, 아이가 거짓말할 이유도 없고 거짓말하는 행동 단서들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아이의 말은 신빙성이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앞선 기억 실험에서 ‘바다’를 분명히 봤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닌 것처럼, 단순히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것과 사건의 진실은 다를 수 있다. 즉, 거짓말이 아니어도 그 기억에 허위 정보가 개입됐을 가능성을 살피는 게 중요한 것이다.
1998년 응용심리학회지(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실린 한 논문에서 실제 범죄 수사와 관련된 녹취록이 소개됐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사건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에게 반투명 창을 통해 다른 방에 서 있는 3명의 혐의자를 보여주면서 누가 범인인지를 물었다. 이때 목격자의 진술은 “아, 이거 참… 잘 모르겠습니다. 저 두 사람 중 하나인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고… 저 두 번째 사람보다 키가 조금 더 컸던 것 같은데, 아무튼 모르겠네요”였다. 30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목격자는 나란히 서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판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이때 목격자가 “잘 모르겠는데… 두 번째 사람인가?”라고 하자, 옆에 있던 경찰관이 “좋습니다(OK)”라고 말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법정에서의 녹취록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재판관 : “증인, 두 번째 사람이 정말 맞습니까? 그냥 추측 아닌가요?”
―증인 : “추측이 절대 아닙니다. 저 사람이 확실합니다.”
앞선 녹취록이 없었다면 판사와 배심원들은 저렇게 확신에 찬 목격자의 증언을 믿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이 목격자의 기억이 왜 이렇게 바뀌었을까? 논문의 저자들은 당시 녹취록에서 경찰관이 했던 “좋습니다”라는 말에 주목하고 있다. 즉, “좋습니다”라는 말이 목격자의 기억을 변화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고, 이를 후속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우리의 기억은 자신도 모르게 바뀔 수 있다. 같은 자동차 사고를 보고도 “자동차가 부딪힌 것을 봤지요?”라고 물어봤을 때보다 “자동차가 꽝 하고 부딪힌 것을 봤지요?”라고 물으면 자동차가 실제보다 좀 더 세게 부딪힌 것으로 기억이 바뀔 수 있다. 이처럼 단어 하나로도 우리의 기억은 쉽게 바뀔 수 있다. 앞에 언급한 방화 사건의 경우도, 어린아이에게 경찰이 “아저씨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봤지? 그 아저씨가 불을 질렀지?”라고 물었을 때, 이 아이에게 “아저씨”가 자신이 자주 가는 동네 가게의 아저씨였다면, 아이의 기억에서는 얼마든지 그때 그 범인이 동네 가게의 아저씨로 바뀌어 저장될 수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기억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무엇인가가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음을 주관적으로 경험한 것에 대한 표현이다. 즉, 기억이라는 것도 일종의 주관적 경험이며 이런 주관적 경험은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최근 오기억에 관한 연구는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암시나 오정보에 의해서도 자신과 관련한 기억이 잘못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어릴 때 놀이동산에서 부모를 잃어버려 고생한 적이 있다는 정보를 부모에게서 듣게 되면, 실제로 그런 일이 없던 사람도 마치 그것을 경험한 사람처럼 그때 자신이 어디에 앉아서 울고 있었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는 등의 구체적인 오기억 내용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불리한 오기억 내용(예를 들면 어릴 때 비행을 저질러 경찰서에 간 적이 있다)도 부모나 가족 등이 합심(?)해서 그렇다고 얘기하면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로 잘못 기억될 수 있다고 2015년 쇼와 포터(Shaw & Porter)의 연구에서 실증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
자신에게 있는 오기억을 되돌릴 방법은 없을까? 독일과 영국의 심리학자들이 2021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 어디에서 왔는지(예를 들면 단순히 가족이나 누군가에게서 들은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직접 겪은 것인지) 그 출처를 생각하고 오기억이 오정보에 의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오기억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글을 읽고 오기억이 있음을 알게 된 독자들은 적어도 오기억의 위험에서 이미 조금은 벗어난 것이다.
최근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통한 오정보와 가짜뉴스의 확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다, 가짜뉴스가 왜곡되고 확산되는 양상이 개인 수준에서 일어나는 오기억과 유사한 측면도 있다. 가짜뉴스가 재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는, 비록 그것이 가짜뉴스라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전에 기사로 본 적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퍼 나르는 것이 윤리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판단하기 때문인 것을 최근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학술지에 실린 논문들이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범람하는 온라인의 오정보와 가짜뉴스를 줄일 방법은 무엇일까.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올해 발표된 한 논문은 정보의 ‘정확성’에 주의와 관심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기억이 왜곡될 수 있는 것처럼, 정보를 만들고 가공하는 과정에 인간이 관여하고 인간의 심리가 반영됨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바람, 모래, 바다, 수영>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오기억(誤記憶·False memory) : 어떤 암시나 맥락을 통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일어난 것으로 잘못 기억하는 것. ‘허위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기억은 자신의 일화로 구성된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최근 연구는 주변 사람들의 잘못된 암시나 오정보에 의해서도 자신과 관련한 기억이 잘못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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