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지난 1월 제8차 노동당대회 때 개정했다는 당규약 일부가 최근 보도됐다. 북한의 당규약 개정에 주목하는 것은, 당(黨)이 정권기관(입법·사법·행정)보다 우위에 있는 체제 특성상, 당규약을 통해 수령의 유일적 통치를 정당화하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 개정에서 당 총비서를 대리한다는 ‘제1비서’ 직제 신설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대한민국의 헌법 체제 수호를 위해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당규약 서문에 명시된 조선노동당의 목표(당면 목적과 최종 목적)이다. 북한은 정권 수립 이후 여러 차례 당 규약의 개정을 통해 일부 표현은 변경했어도, ‘남한혁명을 통한 공산주의사회 건설’이라는 이른바 적화통일 노선을 지난 70년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이 개정에서 관련 문구를 대폭 수정한 것이 눈에 띈다. 북한은 당면 목표가 부강한 사회주의 건설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다만, 남한혁명노선을 규정한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 부분을 삭제하고,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을 실현’으로 대체했다. 이를 놓고 일부 언론에서 북한이 남한혁명통일론과 적화통일을 폐기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러한 표현은 북한이 남조선혁명론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론’으로 정식화한 1970년 제5차 당대회 때 김일성의 총화결정문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여기서 전국적 범위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까지를 혁명 대상에 포함한 표현이다. 북한이 말하는 ‘사회의 자주화’란, 남한혁명을 방해한다는 외세(미국)을 축출하고 민족자주권을 쟁취한다는 것으로 ‘민족해방’혁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발전’은, 파쇼독재라고 규정한 남한 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정권을 수립하자는 것으로, 이른바 북한식 ‘(인민)민주주의혁명’을 뜻한다. 따라서 바뀐 표현은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과 다름없다.
북한은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의 때 30년 만에 당규약을 수정해 조선노동당의 최종 목적에서 ‘공산주의 건설’을 삭제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으로 대체했다. 그때도 이를 놓고 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폐기했다고 주장했으나, 필자가 북한 철학사전의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와 대체 표현이 일치함을 지적한 이후 잠잠해졌다. 이는 북한의 용어 혼란 술책일 뿐이다. 이번 개정에서 북한은 조선노동당의 최종 목적이 ‘인민의 이상이 완전히 실현된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이전 규약처럼 숨지 않고 당당히 공산주의란 표현을 사용했다.
북한이 이번 당규약 개정을 통해 적화통일론을 폐기했다는 주장은 이 표현의 등장으로 오류임이 확인됐다. 북한은 우리 국민이 거부감을 느끼는 ‘혁명’ 즉 ‘민족해방 민주주의혁명’이란 용어를 삭제해 대체 표현하고, 공산주의사회 건설은 당당히 밝히는 선택을 했다. 이는 ‘제1비서’ 직제 신설과 함께 김정은의 권력 장악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용어 혼란 전술을 간과한 채 북한이 ‘남한혁명통일론’을 폐기했으니 우리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움직임을 보면 혹세무민(惑世誣民)이란 말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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