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식 내촌목공소 대표

독일 검은 숲에 귀신·정령 가득
그곳 사람들도 이젠 믿지 않아

소나무는 썩지 않는 것으로 오해
실제로는 습기에 매우 약한 수종

산림 경영에 간벌과 벌채는 필요
임업은 미신이 아닌 엄정한 과학


초록이 만드는 어두움. 숲의 색깔로 녹음(綠陰)은 더할 바 없는 단어다. 여름 맹렬한 잎이 검정 띠가 돼 골짜기를 둘렀다. 어디 실빛 한 줄이 없었나 보다. 단테 알리기에리도 캄캄한 숲에서 길을 잃었다. 검은 숲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나 단테를 안내한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신곡’ 지옥편 첫 곡은 이렇게 시작한다. 거칠고 황량하지 않더라도 무성한 숲은 어둡다. 비가 내리면 숲속의 사위(四圍)는 한낮조차 온통 검은색이다.

독일 서남부의 광대한 숲 슈바르츠발트(black forest)는 흑림(黑林)이라고도 부른다. 시저의 로마 군단도 이 ‘검은 숲’ 흑림을 뚫지 못했다. 시저는 그 깊은 숲에 유니콘이 산다고 믿었다. 끝을 파악할 수 없던 검은 숲. 독일 권역은 중세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었다. 검은 숲에는 귀신, 정령, 미신이 가득했으니까.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도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루터는 마녀를 고문 도구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루터는 하노버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하르츠 산맥 기슭에서 태어나 활약했다. 독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알려진, 숲이 깊은 동네다. 그 숲에는 전나무와 물푸레나무만 보이고, 전날 사냥한 사슴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외진 곳이다. 우리 내촌목공소는 그 지역 제재소의 목재를 사용한 지 오래다. 그들만큼 목재 건조 기술에 탁월한 업체를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목재 첨단 엔지니어링을 이끄는 국가를 꼽으면 단연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세 나라다. 유령과 마귀할멈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던 검은 숲의 나라들. 그런데 숲의 나라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나무의 미신과 속설을 믿지 않는다. 적어도 문학과 신화 역사에 등장하는 나무와 실제로 사용하는 목재의 특성은 엄밀하게 구별한다. 나는 산골에 살면서 왕왕 나무와 목재를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그런데 내 나무 이야기에 처음 듣는 듯 화들짝 놀라거나 갸우뚱하는 이가 많다.

가장 오도돼 있기로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강한 나무다’ ‘잘 썩지 않는다’, 심지어 ‘나무 중 가장 단단한 것이 소나무’로 알고 있는 사람이 숱하다. 그러니 ‘한옥보다 우수한 건축은 없다’. 소나무로 지은 집이니 무조건이다. 지극한 우리 소나무 애호인들. 아쉽게도 소나무는 습기에 약하고 비교적 쉬이 부패하는 수종이다. 하지만 소나무는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 다른 어떤 나무보다 우리와 친숙하다. 전래로 한국인들은 태어날 때 소나무 가지 금줄, 소나무로 지은 집에 살다가, 죽어서는 소나무관(棺), 이러니 우리의 소나무 서정은 길고도 깊다. 그런데 같은 경우로 핀란드 사람들이 자작나무를, 독일인이 전나무를 강하고 품질이 뛰어나다고 하지는 않는다. 아낌없이 사랑받는 나무가 목재의 강도와 품질까지 빼어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소나무도 그렇다.

어느 건축학 교수가 최근 집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저자는 ‘단풍나무를 무지하게 단단한 나무’라고 소개한다. ‘들어 보면 쇠 무게’란다. ‘그래서 육중한 쇠를 던지는 역도 경기장 바닥은 단풍나무 바닥을 깔아야 한다’고 썼다. 건축학자가 체육관에서 단풍나무를 바닥재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는 강한 나무로 지레짐작한 것이다. 학계 유명 인사의 저술로 소나무에 이어 단풍나무 미신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을까 걱정된다. 단풍나무는 적당히 단단하고 그렇게 무거운 나무가 아니다. 참나무, 물푸레나무, 아까시나무, 박달나무 등 더 무겁고 단단한 나무가 주위에 많다. 체육관 바닥에 단풍나무를 사용하는 것은 무겁고 단단해서가 아니다. 단풍나무가 유독 탄성과 복원력이 뛰어나서다.

나무에 얽힌 우리의 정서. 산림과학도 정서의 벽을 넘지 못한다. 근래 우리 마을 30정보 안팎의 산등성이가 갑자기 민둥산이 됐다. 작은 구역이지만 황량해진 풍경에 오가는 사람들이 적잖이 놀란다. 언론에서도 환경문제를 언급하며 이런 방식의 모두베기 벌채를 깊이 있게 지적했다. 마을 소동이 전국의 이슈로 등장했다. 살펴보니 산주(山主)가 기존의 입목(立木)을 베어내고 더 경제성 있는 수종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 목재 수확, 즉 나무 추수를 한다. 산림 경영에 간벌과 벌채는 꼭 필요한 일이다. 숲을 더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시민 정서와 환경론자들의 뜨거움이나 구호로 산림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다. 임업은 엄정한 과학이다.

지난달, 나는 어느 경제연구소에서 ‘세계의 목재 고층 빌딩 건축’에 관한 동영상 강의를 했다. 방송 후 콘크리트 업계에서 목재 구조의 내화 성능 수치를 알고자 하기에 바로 국립산림과학원을 일러 줬다. 이제 산림과학원을 통해 세계의 목재공학 자료에 누구라도 쉬이 접근할 수 있는 시절인데도 숲과 나무에는 갖가지 미신이 날아다닌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마침내 별을 봤으나, 우리 옆에는 과학적 사실이란 더 환하고 선명한 등불이 있다. 숲이 아무리 캄캄해도 지식과 상식 앞에서 유령이나 속설이 머물 틈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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