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경우라도 종교 간 화합과 상생을 해야만 지구촌과 이 국토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
조계종 총무원장 벽산 원행(碧山 圓行) 스님은 최근 펴낸 책 ‘조선이여, 법의 등불을 밝혀라’(불교신문사 발행)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원행 스님의 평소 소신이다.
이번 책은 조선시대에 불교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두 선사, 함허 득통(涵虛 得通·1376~1433)과 백곡 처능(白谷 處能·1617~1680)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함허 선사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의 기세가 치솟아 오르던 시기에 ‘현정론(顯正論)’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을 통해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원행 스님은 “함허는 조선 초기 꺼져가던 불교의 법등(法燈)을 다시 밝히고 호법 의지를 확고하게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1권 8600여 자에 불과한 현정론이 한국 불교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원행 스님은 지난 2013년 ‘조선 초기 관료들의 성리학적 정치이념과 함허 선사의 현정론에 관한 연구’로 한양대 행정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다. 이번 책은 그 논문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스님에 따르면, 함허의 현정론은 불교에 대한 유교의 비판이 성리학자들의 오해와 왜곡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서론에서 도(道)와 성(性)의 개념으로 유교와 불교의 근본사상을 밝히고, 본론의 14개 항목은 유학자들의 배불(排佛)이론이 부당함을 역설하고 있다. 유교를 논리적으로 파헤쳐서 배불의 부당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불교의 사회적 기능이 유교에 못지않게 실천적이며 긍정적임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마지막 항목에서 당시 유행하던 유불도 삼교의 가르침이 서로 통한다는 ‘삼교회통’을 설파한 것은, 함허의 지향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려준다.
함허의 사상은 조선 후기 불교탄압과 소외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 논리를 편 백곡에게 이어졌다. 백곡은 현종이 불교를 탄압하자 이에 항의하는 상소문 ‘간폐석교소(諫廢釋敎疏)’를 올렸다. 탄원형식의 ‘간폐석교소’는 조선시대 모든 상소문 가운데 가장 길고 분량이 많은 것이었고, 불교탄압이 다소간 누그러지는 계기가 됐다. 이는 조선조 불교사에서 억불정책에 맞선 단 한 편의 항소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원행 스님은 함허와 백곡의 사상에서 불교 호법 의지와 함께 종교 간 화합과 상생 정신을 읽어냈다. 강력한 억불정책에 맞서면서도 감정을 절제하고 논리로 대응함으로써 원융회통의 모습을 보이며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원행 스님은 “중화사상에 치우친 학문으로 종교를 500년간 탄압한 조선의 정치적 폭거를 반성하고, 21세기에도 우리 주변에 유사한 일들이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