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 판결 뒤집은 日징용 1심

소신판결 평가 속 혼선 가중
결국 다시 대법원까지 갈 듯
식민지배 불법성 놓고 논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 상대 손해배상 소송이 대법원 판례를 깨고 2년 8개월 만에 ‘각하’로 뒤집히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이번 1심 판결은 2018년 대법 전원합의체의 소수 의견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을 놓고 법원 판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히 갈리고 있어 향후 항소심과 대법 판결을 거듭하면서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

8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양호)는 전날 강제징용 피해자 송모 씨 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16개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각 1억 원을 배상하라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는 소송이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본안 판단을 하지 않고 끝내는 것이다. 재판부는 강제징용 배상청구권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소돼 소송으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한일협정 때문에 곧바로 소멸되거나 포기된 것은 아니지만, 청구권협정은 ‘대한민국 국민이 일본이나 일본 국민을 상대로 소로써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제한된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헌법상 가치인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를 위해 그 소송권은 제한된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 당시 소수의견을 냈던 권순일·조재연 대법관과 같은 판단이다. 당시 두 대법관은 “협정문의 ‘완전한, 최종적 해결’의 뜻은 국민이 더 이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은 다수 의견으로 강제징용 피해보상이 인정된 대법 판결을 뒤집은 이례적인 일로, 이를 두고 법원 내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개별 법관은 독립된 사법기구이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역시 소수의견을 함께 병기하도록 하는 등 다양성을 존중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소신 있고 용기 있는 판결로 한일협정에 근거한 새로운 판례가 재정립돼야 한다”고 판결을 지지했다.

반면,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자신의 소신과 다르다고 해도 대법원 판례를 따라 하급심 법리를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고, 법적 안정성을 위해서도 따라야 한다”며 “대법 전원합의체가 판결한 내용이 1심에서 뒤집혀 국민 혼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원고 측은 각하 판정에 즉각 항소 의사를 밝혔다. 장덕환 일제강제노역피해자 정의구현 전국연합회 회장은 선고 직후 “정말 가슴치고 통탄할 일”이라고 했다.

이번 사건은 고등법원으로 넘어가 심리를 진행한 이후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대법원 상고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외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인 만큼, 당사자들이 하급심 판결을 수용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항소, 상고를 거쳐 대법원으로 가게 되면 전원합의체를 거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1심 판단처럼) 소 청구권이 없다고 판단하면 앞선 (대법원) 판단을 취소하고 각하로 판례를 변경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이 사안을 심리할 경우 2018년 10월의 기존 판례를 뒤집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 것이란 게 법조계 중론이다. 한 현직 판사는 “1심 재판부가 과거 대법원 판결이 법리에 안 맞는다고 판단해 판결을 이례적으로 뒤집은 것”이라면서 “그러나 같은 대법관들이 이 사안의 심리를 맡는다면 본인들의 판단을 바꿀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이은지·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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