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문헌에 기록된 떡이 200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
- 서양 식문화로 위축됐으나 현대에도 지역별로 전승
- “전국에 광범위 …보유자·보유단체 없이 종목만 지정”
청동기 시대부터 내려온 ‘떡 만들기’ 문화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이웃과 나누어 먹는 전통 생활관습까지 포괄한 ‘떡 만들기’를 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떡은 한국인이 일생 동안 거치는 각종 의례와 행사 때마다 만들어서 사회구성원들과 함께 나누어 먹는 음식으로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무형적 자산이라고 지정 예고 이유를 설명했다. 정(情)을 주고받는 문화의 상징으로 공동체 구성원 간 화합을 매개하는 특별한 음식인 떡을 만드는 문화가 유지·전승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떡은 곡식 가루를 시루에 안쳐 찌거나, 쪄서 치거나, 물에 삶거나, 혹은 기름에 지져서 굽거나, 빚어서 찌는 음식을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일생의례(백일·돌·혼례·상장례·제례)를 비롯하여 주요 절기 및 명절(설날·정월대보름·단오·추석) 등에 다양한 떡을 만들고 나누어 먹는다. 또한 떡은 한 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을신앙 의례, 상달고사 등 가정신앙 의례와 별신굿, 진오귀굿 등 각종 굿 의례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제물(祭物)이다. 오늘날에도 개업떡·이사떡 등을 만들어서 이웃 간에 나누는 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청동기·철기 시대 유적에서 시루가 발견된 점, 황해도 안악 3호분 벽화의 부엌에 시루가 그려진 점을 미루어 고대에도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추정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떡을 뜻하는 글자인 ‘병(餠)’이 확인되고, ‘고려사(高麗史)’와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목은집(牧隱集)’ 등 각종 문헌에 떡을 만들어 먹은 내용이 나온다.
조선 시대에는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조리가공법이 발전하면서 떡 재료와 빚는 방법이 다양화돼 각종 의례에 떡의 사용이 보편화됐다. 특히, 궁중과 반가(班家)를 중심으로 떡의 종류와 맛이 한층 다양해지고 화려해졌다. ‘산가요록(山家要錄)’‘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규합총서(閨閤叢書)’ ‘음식디미방’ 등에서 다양한 떡의 이름과 만드는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각종 고문헌에 기록된 떡이 200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하다.
19세기 말 서양식 식문화 도입으로 우리 고유의 식생활에 변화가 생겼고, 떡 만들기 문화도 일부 축소됐다. 또한 떡 방앗간의 증가로 떡 만들기가 분업화되고 떡의 생산과 소비 주체가 분리됐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다양한 떡이 지역별로 전승되고 있으며, 의례, 세시음식으로 만들고 이웃과 나누는 문화가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이처럼 ‘떡 만들기’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향유되고 있다는 점, 삼국 시대부터 각종 고문헌에서 떡 제조방법 관련 기록이 확인되는 점, 식품영양학·민속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학술연구 자료로서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 등에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았다고 문화재청은 전했다.
지역별 지리적 특성을 활용한 다양한 떡의 제조가 활발하고, 지역별 떡의 특색이 뚜렷한 점, 현재에도 생산 주체, 연구 기관, 일반 가정 등 다양한 전승 공동체를 통하여 떡을 만드는 전통지식이 전승·유지되고 있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떡 만들기’는 한반도 전역에서 온 국민이 전승·향유하고 있는 문화라는 점에서 이미 지정된 ‘김치 담그기’ ‘장 담그기’ 등과 같이 특정 보유자나 보유단체는 인정하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8일부터 30일간 ‘떡 만들기’를 지정 예고하고,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다. 이후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무형문화재의 지정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할 예정이다. 지정예고 기간에 문화재청 누리집(http://www.cha.go.kr) 외에도 ‘케이(K) 무형유산 동행’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떡 만들기’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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