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사샤 세이건 지음│홍한별 옮김│문학동네

美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딸
삶의 소중함·행복·기쁨 통찰
“모닝커피·문자 등 소소한 의식
얼마나 큰 축복인지 느껴보라”


거의 모든 사람이 쳇바퀴 돌 듯 살아서일까, 일상의 소중함을 늘 잊고 산다. 혹은 너무 가까이 있어 그 기쁨을 알아차리지 못해서일 수도 있겠다. 삶이 무료하고 일상이 나른하다면 사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가 제격일 듯하다. ‘세이건’이라는 그의 성이 익숙하다면…, 맞다. 사샤 세이건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과 영화 제작자이자 작가인 앤 드루얀의 딸이다. 두 사람에게서 “현상을 비판적으로 보되 삶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말라”는 가르침을 얻은 사샤는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일상이 빚어내는 경이로운 우주를 따뜻한 어조로 풀어낸다.

사샤는 ‘들어가는 말’에서 인간 존재는 ‘영원한 미스터리’ 그 자체라고 말한다. 무에서 비롯돼 마침내 무로 돌아가는, 무에서 잉태돼 성장하고 죽는, 이후는 영원한 미스터리임에도 그 비밀을 파헤치려고 애쓰는 존재가 바로 우리다. 그 비밀을 파헤치는 두 축은 종교와 과학이어야 한다. 사샤 역시 무신론자였지만, 아버지 칼 세이건이 그랬던 것처럼 종교의 역할만큼은 간과하지 않는다. 종교는 “공감·감사·경이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하고, 과학은 “우리가 꿈도 꾸어보지 못한 진정한 장엄함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태어난다는 것만큼 우리 일상 가운데 공감·감사·경이의 감정을 이끌어내고, 진정한 장엄함을 주는 일은 없다. 과학의 눈으로 보면 태어남은 더 놀랍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설 정도로 큰” 무한한 우주, 그중 “우리가 살기에 딱 적당하게 완벽히 맞춰진 행성”에서 태어났으니 사실상 기적과 다를 바 없다. 사샤는 아버지가 천착했던 외계인의 존재 여부, 딸이 태어났을 때 느낀 경탄, 즉 과학과 삶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태어남의 신비를 조곤조곤 설명한다.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 각자가 살아서,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게 되기까지, 우리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도달하기까지 있었던 그 모든 일에 대해 나는 경이를 느낀다.”

사샤와 그의 남편 존이 빼놓지 않는 “매일의 의식” 몇 가지가 있다. 아침이면 존이 먼저 일어나 커피를 만들어 침대에 있는 사샤에게 가져다준다. 고마움의 인사가 빠질 리 없다. 존은 퇴근하며 사샤에게 “출발!!!”이라는 문자를 보낸다. 사샤는 그 문자에 “여전히 가슴이 살짝 떨린다”, 좋아하는 사람을 곧 만나게 되리라는 설렘 때문이다. 사샤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특별한 행동은 그게 무엇이든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의식”이라고 말한다. 그 가치를 늘 잊고 살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 아이들에게도 매일의 의식을 찾을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사샤는 딸이 “세계의 역사와 예술, 그 안의 존재들과 그들 삶의 방식, 우주에 관한 탐구를 노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 끝내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질문하는 아이들을 얼마나 귀찮아하는가. 질문하는 아이들은 우리에게 삶의 비밀을 말해주는 원천인데도 말이다.

계절도 삶의 신비를 보여주는 놀라운 장치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는 사실상 우주의 변화다. 그 위대한 변화를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경험한다. 때론 너무 춥고, 너무 덥다며 하늘에 삿대질을 한다. 하지만 사샤가 보기에 계절은 지구 생명체들에게는 “크나큰 축복”이다. 지구 생성 초기 대충돌로 인해 생겨난 파편들이 지구 궤도에 진입해 달이 됐고, 그 달은 지구 주변을 돌며 낮의 길이를 달리하고, 더더욱 아름다운 광경을 수시로 제공한다. 추분(秋分)이 지나면 서서히 식물은 시들고, 동물은 동면 준비를 한다. 사람들은 다가올 겨울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또한 여름에 한껏 흘린 땀으로 결실한 것들로 축제를 연다. 빛이 점점 시들고, 그 강도도 약해지는 탓에 “어둠과 죽음”의 시작으로 생각했던 가을을 이겨내기 위해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어둠을 몸에 두르고 죽음의 힘을 받아들여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

사샤가 마지막으로 택한 주제는 “죽음”이다. 태어남이 일상의 신비이듯, 죽음 또한 그러하다. 사샤는 남편 존과 사귈 때 아버지 칼을 비롯해 가족이 묻힌 묘지에 자주 갔다. 그곳에서 사샤는 존에게 “우리 결혼하기로 했으니까 죽은 다음에 여기에 같이 묻힐까?”라고 물었다. 존의 대답은 “좋다”였고, 사샤는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죽은 뒤에도 존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에 뛸 듯이 기뻤다. 죽음 이후는 영원한 미스터리지만, 죽음마저 삶을 나눈 이들과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복은 없기에 그렇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노래했다. 내 곁에서 존재감 없이 기다리는 일상,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신비를 경험할 수 있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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