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아일랜드, 문학의 나라에서’, 종이에 수채물감, 크레파스와 펜, 50×54㎝, 2020.
김병종, ‘아일랜드, 문학의 나라에서’, 종이에 수채물감, 크레파스와 펜, 50×54㎝, 2020.


■ (78) 더블린, 벨파스트, 런던과 C S 루이스 (上)

잉글랜드와 갈등도 빚었지만
세련된 현대 미술이 넘쳐나는
런던을 뺨칠 정도의 벨파스트
C S 루이스의 애증어린 고향

런던서 학자·소설가로 명성
대영제국 기사 작위 받으며
아일랜드인과 잉글랜드인의
두 정체성 한 몸에 지니게 돼


내가 아는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담임)는 다독가(多讀家)다. 그는 신학이나 철학 외에도 음악, 미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다. 특히 미술 분야는 딜레탕트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책을 많이 읽을 뿐 아니라 지인들에게 책 선물하기를 좋아해서 내게도 가끔 한 보따리씩 다양한 책을 보내오곤 한다. 얼마 전 오 목사로부터 받은 책 중에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가 있었다. 책을 받은 순간 아, 이 책 싶었다. 처음 이 책을 선물 받은 것은 지금은 캐나다에 가 있는 제자 함미애로부터였다. 1980년대 나는 대학의 ‘기독교와 미술’ 관련 서클의 지도교수로 있었는데 당시 그 그룹의 제자들은 C S 루이스의 책을 즐겨 읽고 토론하곤 했다. 그때 그 여학생은 유독 그 작가에게 매료돼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기독교 변증서로서 이제는 신고전이 된 ‘순전한 기독교’를 막상 당시 지도교수였던 나는 읽지 못한 상태였다. 내게 꼭 읽어보라는 카드와 함께 책을 보낸 앳된 여학생은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는데 40여 년이 지나 이번에는 그 책을 유명 설교가에게 받게 되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이렇게 한 세대가 가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세대도 가고 세상은 바뀌는데 한 권의 책이 40년 넘도록 읽히고 또 읽힌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다. 그의 책 중에 ‘순전한 기독교’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다른 책들 또한 아직도 대형서점 매대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나니아 연대기’ ‘뜻밖의 기쁨’ ‘헤아려 본 슬픔’ ‘고통의 문제’ ‘세상의 마지막 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그리고 ‘오독’….

시와 산문, 허구와 사실 사이를 오가는 그 마디진 손가락 사이에서 빚어져 나온 문자들은 햇빛 받고 흐르는 물살처럼 영롱하기만 하다. 그는 타고난 문장가였다. 습기 차고 슬픈 지상과 햇빛이 쏟아지는 천국을 왕래하는 우편배달부처럼 세월이 가도 충실한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이제는 정신과 의사 모건 스콧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과 함께 그 분야 독서계의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되고 있다. 그의 책이 지구인들에게 그토록 많이 읽힌다는 것은 한편으론 슬프고 또 한편으론 기쁜 일이다. 그것은 이 행성에는 아직 허리가 휘도록 노동해도 가족끼리 저녁 한 끼 자유롭게 먹지 못하는 삶이 있다는 이야기며, 대성통곡해도 풀리지 않을 응어리를 가진 삶이 널려 있고, 허깨비 같은 죄와 싸우느라 기진맥진한 삶이 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슬픈 일이다. 그런데도 그 땅에 굳건히 두 발을 딛고 서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려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상처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죽음에 대해, 신에 대해 묻고 싶어 한다는 점에선 희망적이다.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특권일 것이기 때문이다.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이곳의 분위기는 내가 지나온 더블린과는 확연히 다르다. 북아일랜드 분쟁과 분리주의의 갈등 및 상처가 깊은 곳인데다가 한때는 화약 냄새 자욱한 곳이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사방이 질펀하고 나른한 평화투성이다. 더구나 내 눈에 비친 벨파스트는 문학이 아닌 미술의 도시. 런던을 뺨칠 만큼 세련된 현대미술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그중에는 정치색을 띤 벽화물도 많다. 옛 조선소 자리에 들어선 ‘타이태닉 벨파스트’는 끊어지다시피 했던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다시 이어놓았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했던 여객선 타이태닉을 이곳 조선소에서 마무리 작업해 진수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스트 벨파스트(East Belfast)로 발길을 옮긴다. 이른바 C S 루이스의 광장을 보기 위해서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들어서면서는 피식하고 웃는다. 그의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 속에 나오는 철조 인물상과 소품들만 달랑 세워져 있어서다. 그러고 보면 C S 루이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순전한 기독교’ 쪽보다는 ‘나니아 연대기’ 쪽이 훨씬 많은 것 같다.

발길을 천천히 시내로 돌렸는데 잉글랜드와의 갈등과 분열이 극심한 지역인데도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들로 마치 작은 런던 같은 인상이다. 미워하며 선망했던 것일까. 어쨌거나 C S 루이스는 이곳을 떠나 런던으로 갔다. 그리고 런던에서는 더블린을 왕래했다. 허다한 작가, 미술가들이 밟는 경로다. 그들처럼 그 역시 애증의 고향을 떠나 런던에서 학자, 소설가, 교수직을 얻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대영제국의 훈장과 영국기사 작위를 받으며 아일랜드인과 영국인의 두 정체성을 한 몸에 지니게 된 것이다. C S 루이스의 문장은 우아하고 웅혼하다. 섬세하며 아름답다. 교향악과 같고 가늘게 떨리는 바이올린의 현과 같다. 마치 아일랜드의 장엄한 모허 절벽 같은 원시의 자연을 닮은 듯하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독특한 도시적 섬세함과 세련성을 보인다. 말할 것도 없이 잉글랜드적 문예 전통이다. 그의 정신과 문학 세계는 말하자면 아일랜드와 잉글랜드라는 일란성 쌍생의 소산인 셈이다.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변증적 방법으로 기독교 조명… ‘나니아연대기’도 집필

C S 루이스 (Clive Staples Lewis·1898~1963)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출생해 런던을 중심으로 활동한 소설가, 시인, 문학비평가, 신학자, 기독교 변증가, 수필가, 교수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과 르네상스 문학 등을 가르쳤다. 무신론자였다가 30세 무렵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여 변증적 방법이라는 새로운 인식론으로 기독교를 조명했다. 평신도 신학자였지만 ‘순전한 기독교’ 등의 저서를 통해 제임스패커, 팀 켈러 같은 신학자, 목회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나니아 연대기’ 같은 판타지 소설을 쓰기도 했으며 무려 30여 종에 이르는 그의 전기물이 여러 필자에 의해 집필됐을 만큼 큰 영향력을 끼쳤다.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