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권력에 의한 무자비한 범죄
김정은 제소 결정에 영향 주목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필리핀의 ‘마약과의 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폭행·살인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이를 진두지휘한 로드리고 두테르테(사진) 필리핀 대통령이 전범이 될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필리핀의 ICC 회부가 국제사회에서 요구해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ICC 제소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15일 워싱턴포스트(WP)는 ICC 검찰이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한 2016년부터 필리핀이 ICC에서 탈퇴한 2019년 사이에 벌어진 마약 전쟁 살인 사건에 대한 조사를 공식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파투 벤수다 ICC 차장검사는 “필리핀 보안군의 일원인 국가 행위자(자경단)들이 수천 명의 마약 사범과 기타 민간인을 살해했다”며 “지난 3년간의 예비 조사를 바탕으로 반인도적 살인 범죄가 벌어졌다는 근거를 모았다”고 밝혔다. 자경단은 일부 경찰과 민간인을 죽이기 위해 돈을 주고 모집한 전직 공산주의 반군들로 구성돼 있으며, 마약사범과 두테르테의 정적을 비롯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무자비한 살인을 저질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필리핀 당국은 2016∼2020년 공권력에 의해 6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지만, 인권감시단체들은 사망자는 필리핀 정부 발표보다 최대 5배는 될 것으로 보고 있다. ICC는 사망자를 1만2000명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두테르테 대통령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국가안보 우려를 들며 “인권감시단체에 마약 전쟁 기록에 완전한 접근 권한을 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사에 협조하지 않을 뜻을 간접적으로 밝혔다.

일각에서는 ICC의 필리핀 사태 조사 착수에 따라 인권 탄압을 자행해온 김 위원장에 대한 제소 여론도 강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북한 인권 상황의 ICC 회부와 책임자 처벌 촉구는 2014년부터 7년 연속 유엔 총회 결의안에 포함됐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국·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2019년까지 ICC에 가입돼 있던 필리핀에 대해서는 안보리 결의 없이 예비조사 개시가 가능하지만 북한에는 안보리 결의가 필요하다.

김선영 기자 sun2@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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