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무명열사 묘역에 묻혀 있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 5명 중 1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15일 5·18 무명 열사 묘역에 안치된 5기의 유골 가운데 1기(묘 4-90)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1980년 5월 20일 광주지역 불상의(밝혀지지 않은) 장소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신동남(당시 30세) 씨다.

41년 만에 그의 신원이 확인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신 씨는 중상을 입은 당일 적십자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5월 22일 사망했고, 그의 시신은 시민수습대책위원회에 의해 옛 전남도청으로 옮겨졌다. 이후 연락이 두절된 아들(이금영 씨)을 찾아 나선 어머니가 신 씨의 시신을 아들로 착각하고 장례 절차를 진행했다. 그의 시신은 그해 5월 29일 5·18 구묘역인 망월묘역에 이금영의 이름으로 안장됐다.

그러나 한달이 채 못돼 이금영 씨가 상무대에 연행돼 구금돼 있던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의 시신은 그해 6월 신원 미상으로 처리됐다.

5·18조사위는 신동남 씨와 신 씨 동생의 유전자 대조작업을 거쳐 묘지번호 4-90번의 유해가 신 씨임을 확인했다. 조사위 관계자는 “23개의 유전자좌 중에서 21개의 유전자좌가 일치했는데, 이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등도 ‘일치’로 판단하는 기준치”라며 “그동안 5·18 관련 피해자들의 유전자 분석 및 신원미상의 사망자 신원을 확인을 사실상 전담해 온 전남대학교 법의학교실의 검수도 받았다”고 설명했다.

당초 신 씨를 포함한 무명열사는 모두 11기였는데 2001년 구묘역에서 현재의 국립 5·18 민주묘지로 이장하는 과정에서 6기의 신원은 확인된 바 있다.

신 씨의 신원이 확인되면서 국립 5·18 민주묘지에 남아있는 무명열사는 4명이 됐다.

한편 5·18 관련 보상이 시작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7차례에 걸쳐 행방불명자로 242명(중복 신고 제외)이 신고됐고, 이 가운데 84명이 행불자로 공식 인정받았다.

광주=정우천 기자 sunshin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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