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당헌(黨憲)은 당원의 약속이지만, 국민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헌법이 정당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민주적 운영을 요구하고, 국가가 수백억 원의 보조금을 주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은 수시로 당헌을 뭉개려 든다. 지난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공천 금지’ 조항을 뒤엎더니 두 달 만에 ‘대선 6개월 전 후보 선출’ 조항도 그렇게 하려고 한다. 참다못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15일 “약장수가 가짜 약 팔던 시대는 지났다”는 격한 표현까지 동원해 반대했다. 온갖 정략이 교차하지만, 이 부분에 관한 한 이 지사 입장이 옳다.

민주당 당헌 제88조는 대선 180일 전까지 후보를 선출하도록 규정한다. 9월 9일 이전에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그런데 이낙연 전 대표와 정세균 전 국무총리, 이광재·최문순 전·현 강원지사 등이 코로나와 흥행 등을 이유로 경선을 두 달 늦추자고 주장한다. 물론, 대선 후보 선출은 당내 행사다. 당헌에 ‘상당한 사유가 있을 때’ 당무위원회가 연기를 의결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당헌을 바꾼다면 당헌은 있으나 마나다.

국민은 ‘장식용 당헌’을 가진 정당과 그런 당의 후보를 신뢰하기 힘들다. 민주당은 지난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도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 시절이던 2015년 만든 당헌에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재·보선이 실시되면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6개월 전’ 조항은, 이낙연 대표가 당선된 지난해 8월 전당대회 때도 논란이 됐는데, 그대로 유지키로 결론이 났었다. 대통령이 만든 당헌을 뒤집고, 이 전 대표는 불과 10개월 전 자신이 재확인한 조항을 바꾸자고 한다. 블랙코미디다. 헌법도 바꾸는데 당헌을 바꾸지 못할 이유는 없다. 민주당 당원들이 결정하면 막을 수도 없다. 그러나 공당(公黨)임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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