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러 정상, 3시간반 회담

전략적 안정성 공동 성명 채택
바이든 “솔직… 관계 개선 전망”
푸틴도 “신뢰의 섬광이 비쳤다”

나발니·해킹 등 면전서 꺼내자
푸틴, 美 인종차별 카드로 역공


냉전 이후 최악의 미·러 관계 속에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첫 정상회담이 핵전쟁 방지를 위한 ‘전략적 안정성에 관한 공동성명’ 등을 채택하고 막을 내렸다. 두 정상은 향후 양국 관계의 탐색전이었던 이번 회담에 대해 일단 긍정 평가를 하면서도 핵심 현안인 인권, 사이버 안보, 우크라이나 문제 등에서는 큰 견해차를 드러냈다.

16일 백악관 및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정상회담 직후 핵전쟁 불가 원칙을 재확인하고 이를 위한 양국 간 대화 착수를 내용으로 한 전략적 안정성에 관한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2026년 시한 종료되는 양국 간 핵 통제 조약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 스타트)’을 대체하는 핵 협상을 조만간 시작하기로 합의한 셈이다. 두 정상은 또 외교 갈등 속에 3월과 4월 각각 철수한 양국 주재 대사들도 다시 임지로 복귀시키기로 합의했다.

두 정상은 회담 분위기에 대해서도 일단 합격점을 줬다. 바이든 대통령은 “꽤 솔직했다. 좋고, 긍정적이었다”며 “관계를 상당히 개선할 전망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도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해 “신뢰의 섬광이 비쳤다”고 평가했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서도 “기대했던 대로 아주 건설적이고 균형 잡혀 있으며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러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주요 현안에 대해서는 예상대로 양측 입장이 평행선을 달렸다. 바이든 대통령은 공언했던 대로 수감 중인 러시아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문제를 꺼내 들었다. 그는 “(나발니가 옥중 사망하면) 러시아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을 그에게 분명히 밝혔다”며 “인권은 항상 테이블 위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 이후 벌어진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 1월 의회의사당 점거 사태 등을 거론하며 역공을 가했다. 그는 “이 사람(나발니)은 유죄 판결의 집행유예를 받은 후 외국으로 치료받으러 갔으며 퇴원 후에도 출석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어떤 논의를 할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 배후 의혹과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상당한 사이버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푸틴 대통령에게) 알려줬다”며 “그는 대가가 있을 것이라는 걸 안다. 내가 행동할 것이라는 걸 안다”고 말해 보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푸틴 대통령은 양국이 사이버 안보 관련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도 러시아 배후설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며 “오히려 미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 국경 긴장 고조 문제와 관련해서도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위협 조치라고 규정한 반면 푸틴 대통령은 분쟁 해결 협정을 위반한 쪽은 우크라이나이고 자국은 합법적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러 정상회담이 예상대로 큰 성과 없이 끝남에 따라 향후 추가 협상 및 실무협의 결과에 따라 양국 간 관계 개선 여부가 판가름 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으로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실제로 중요한 전략적 대화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남석 기자 namdol@munhwa.com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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