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 호로비츠

‘일요일 오후 4시만 연주’깐깐
개인조율사·요리사 함께 대동
배탈 대비 개인 정수기도 휴대

베를린 데뷔서 압도적 사운드
지휘자,아예 단상 내려와 관람
카네기홀 무대이후 전세계 명성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 글쓰기에 능한 사람(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음악가들에게는 잘 통하지 않는 말이다. 음악가들은 악기를 매우 가린다. 자신에게 맞는 좋은 악기를 만나 길들여야 하고, 쉼 없는 연습으로 악기와 교감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만 한다. 그렇기에 모든 연주자는 악기를 가리고 또 제 몸처럼 소중히 여긴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의 마법사’로 추앙받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1904∼1989)는 보통 깐깐한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연주자가 자신의 악기와 함께 연주 무대에 서지만 피아노만큼은 예외다. 운반상의 어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연주를 수락하기 위한 절대 조건 중 하나는 ‘반드시 나의 전용 악기로 연주해야 함’이었다. 그는 총 5대의 스타인웨이(Steinway & Sons) 피아노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연주의 레퍼토리에 따라 그에 어울리는 음색의 피아노를 골라서 연주했다. 그의 풀 사이즈 그랜드 피아노 운반을 위해서는 보잉 747기가 필요했다. 그의 또 다른 조건은 ‘연주는 반드시 일요일 오후 4시여야만 할 것’이었다. 평일에 저녁도 먹지 못한 청중이 허겁지겁 공연장으로 달려와서는 자신의 연주를 온전히 감상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또 피아노의 완벽한 조율을 위해 전 세계 어디든 개인 조율사인 ‘프란츠 모어’가 뒤따랐고, 채식의 맞춤 식단을 위한 개인 요리사를 대동했다. 혹여 물갈이로 배탈이 나 연주를 망칠까 봐 항상 개인 정수기를 휴대했다. 그러나 이런 그의 유별스러움을 전 세계는 기꺼이 받아들여 줬다. 오히려 무한한 찬사와 존경을 보내며 말이다.

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집안에서 전기 엔지니어 아버지와 피아니스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호로비츠는 6세부터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드러낸 그는 겨우 9세의 나이로 키예프 음악원에 입학한다. 그의 스승 블루멘펠트는 졸업을 앞둔 그에게 “넌 더 이상 피아노에 관해서는 배울 것이 없으니 연주와 기교에 대해선 앞으로 어떤 스승도 모시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가 21세 때 독일 베를린의 데뷔 연주에서 연주한 곡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호로비츠가 첫 카덴차(cadenza·독주자의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피아노에서는 압도적인 사운드가 뿜어져 나왔는데 이에 놀란 지휘자가 공연 중인 것도 잊은 채 그의 손놀림을 보기 위해 포디엄(지휘자 단상)에서 내려온 사건은 너무나 유명하다. 24세 되던 해인 1928년 카네기홀의 데뷔 무대는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당시 지휘자인 토머스 비첨은 연주 내내 느린 지휘로 우유부단한 음악을 이어 나갔고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를 감지한 호로비츠는 지휘자의 사인을 무시한 채 빠르고 성난 템포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호로비츠가 한 마리의 들소처럼 폭주하기 시작하자 당황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그의 음악을 뒤따랐고 관객들은 열광하며 환호했다.

오늘의 추천곡
- 카르멘 변주곡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피아노 변주곡으로 편곡한 작품으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가장 유명한 편곡 작품. 1923년 처음 편곡했고 그 후 여러 번 개정했다. 호로비츠는 이 작품을 1928년, 1947년, 1968년, 1978년에 정식 레코딩 했는데 이때마다 조금씩 개정했고 음반을 통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관객들에게는 피아노를 통해 원곡 이상의 감동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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