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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30 MZ세대 보고서

② MZ의 결혼관 - “내 삶·행복에 집중하고 싶어”

女, 男보다 결혼에 부정적
“해야한다” 응답 22% 그쳐
“제도로 묶인 부부관계 아닌
‘동반자’있으면 외롭지 않아”

MZ 대다수 “자녀 안낳겠다”
“남과 계속 비교하는 세상서
육아 더 부담스럽고 힘들어
아이 위해 희생… 억울할 듯”


소위 ‘3포 세대’는 느슨한 연대라는 인간관계를 선호하는 한국의 ‘2030’ 청년들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계속된 경기 불황과 취업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연애·결혼·출산을 모두 포기(3포)했다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세대)의 자조적 심정이 담겨 있다. 정부는 각종 출산장려 지원정책을 쏟아내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결혼하는 청년들에게 1억 원을 대출해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는 속내는 따로 있으니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MZ세대는 말한다. “우리는 결혼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다만 선택하지 않기로 했을 뿐.”

◇“결혼은 인생의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 = “아빠는 내가 ‘결혼 안 하겠다, 애 안 낳겠다’고 하면 학을 떼요. 사람으로 태어나서 결혼하고 애 낳는 게 도리라는데 정말 그런가요?” 최근 취업에 성공해 이제 막 사회의 문턱을 밟은 김경민(여·28) 씨가 부모님과 가장 큰 세대 차이를 느끼는 순간은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다. 경민 씨는 결혼 생각이 없는 비혼주의자다.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함께 한집에서 살아가는 것은 ‘하이리스크(high-risk·고위험)’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도 처음부터 결혼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남자친구도 사귀며 언젠가 결혼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연애하며 쌓은 추억도 많다. 다만 경민 씨는 결혼해도 ‘이득’이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 커리어에만 집중하면 되죠. 만약 결혼하면 우리 부모님과 남편 부모님도 신경 써야 하는 데다, 내 라이프 스타일을 바꿀 만큼 결혼이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에요.”

문화일보가 심층인터뷰·설문조사를 통해 MZ세대 남녀 32명에게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자, 공통적인 답변 취지는 “결혼 제도로 묶이는 남편·아내 관계가 아닌 ‘동반자’만 있으면 안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해외 유학을 준비 중인 김민하(여·29) 씨는 “내 삶에 집중하기도 바쁘고 아이를 가졌을 때 여성이 자기 인생을 찾기도 어려운 것 같다”며 “연인이 있다고 해도 결혼보다 동반자나 친구, 룸메이트처럼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윤영(여·30) 씨 또한 “(방송인) 송은이, 김숙, 이영자, 최화정을 보면 서울에 살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함께 밥을 먹는 크루(팀원)”라며 “나이 들어서도 회사나 일만 남는 게 아니라 일상을 공유할 크루가 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결혼 준비 자체가 현재의 나에 대한 희생 =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MZ세대 남녀에게 전통적 결혼 제도는 또 다른 ‘족쇄’와 같다. 이직을 준비 중인 황인성(31) 씨는 결혼만 보고 달리는 삶이 싫어 결혼에 회의적이다. 웨딩컨설팅 듀오웨드가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신혼부부 1000명(500쌍)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혼부부 총 결혼비용은 2억3618만 원에 달했다. 주택 비용만 해도 전국 평균이 1억9271만 원으로 전체 결혼 비용 중 81.6%를 차지한다. “1억 원이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차곡차곡 모아도 36세는 돼야 1억을 모을 수 있는데 그러기엔 내 삶이 너무 힘들어질 것 같아요. 돈도 좀 쓰면서 살아야 하는데….” 인성 씨는 “미친 듯이 하고 싶은 것도 아닌데 현재를 희생하며 굳이 결혼해야 하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혼에 대한 부정적 반응은 MZ세대 남성보다 여성들 사이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만 13세 이상 국민 3만8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계청의 ‘2020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와 30대 모두 ‘결혼하지 않아도 좋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52%, 49.7%로 ‘해야 한다’는 응답보다 높았다. 특히 미혼 남성의 경우 ‘결혼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40.8%였지만 미혼 여성의 경우 22.4%에 그쳤다.

◇아이보다 내 삶이 더 중요… 갈수록 자녀 양육 부담 가중 = MZ세대가 결혼보다 더욱 두려워하는 것은 출산과 자녀 양육이다. 심층인터뷰를 진행한 MZ세대 대다수는 결혼에 대한 생각을 묻자 ‘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지만, 자녀계획에 대해서는 ‘낳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여성과 남성, 밀레니얼(M)·Z세대 등 성별과 연령에 상관없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의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TV의 여러 육아예능 프로그램과 각종 매체를 통해 육아의 고통이 얼마나 고된지, 굳이 낳아보지 않아도 너도나도 다 아는 세상이 됐다. ‘일단 낳아 놓으면 동네 사람들이 키워준다’고 얘기하는 시대도 지났다. 아이가 주는 형이상학적 행복보다 현실적 어려움이 직접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직장인 이민정(여·29) 씨는 최근 출산에 관한 에피소드를 다룬 네이버 웹툰 ‘아기 낳는 만화’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민정 씨는 “나는 나이가 20세가 넘도록 애를 낳으면 (산모도) 한 달 동안 기저귀를 차고 있어야 하는지 몰랐다”며 “출산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을 호소하는 여성들에게 꾀병을 부린다고 함부로 말하면서 우리 사회가 출산과 아기를 존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낳겠냐”고 말했다. 사회초년생 안병호(27) 씨는 “나는 엄마, 아빠처럼 희생적으로 아이에게 해줄 성격이 못 된다”며 “그 아이의 평생을 책임지다 보면 난 마흔이 넘어 ‘꼰대’가 되고 너무 억울할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SNS로 타인의 일상이 모두 공유되는 시대가 되면서 내 아이에게 남들만큼 좋은 것을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출산 기피 심리의 또 다른 이유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노현경(여·32) 씨는 동네 맘카페에 기저귀 제품에 대한 정보를 묻는 글을 올리자 소위 ‘파워블로거’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쏟아지는 정보가 육아에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내 아이에게 무조건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엄마들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뭐가 더 좋은지 공부해야 하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소비까지 하게 된다. 또 지난 3월 결혼 5주년을 맞은 최다운(여·32) 씨는 아직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남과 계속 비교당하는 세상에서 아이를 키울 일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특별기획팀 = 허민 전임기자, 박준희·나주예 기자, 안수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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