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종(1937∼2014)·김춘자(1943∼2013)

이달 초 조카 집을 찾아 형님 내외간 합동으로 제사를 지내는 날, 제사상에 올려진 사진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에 형님과 같이 지냈던 생각이 간절해 몇 자 올립니다. 우리 형제가 제주일중에 다니던 시절이었지요. 형님과 나는 두 살 차이로 성장했기 때문에 늘 같이 놀고 공부해왔습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생전에 아버지가 사용했던 우비를 형제가 같이 둘러쓰고 남문통 동산을 따라 걸어서 등교했습니다. 어머님은 우리 형제에게 거는 기대가 컸지요. 형님은 중학교 때 늘 우등생이었고 웅변대회에 자주 참가해 입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형님은 당시 제주에서 명문고인 오현고 입학시험에서 3등을 차지했지만, 국립체신고등학교가 인기였던 시절인 데다 육지학교를 막연히 동경해 체신고에 가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부모님도 어쩔 수 없이 이 학교로 진학하는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이 학교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학교로 워낙 어려운 여건 때문에 형님은 도중 하차해 할 수 없이 귀향했지요. 그때 만약 제주시 내의 고교에 진학했더라면 형님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형님은 늘 과음하다 보니 건강을 지키지 못해 77세 되는 해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형수님은 가족이 많은 저희 집안에 큰 며느리로 시집오셔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형수님은 동네 공터만 있으면 텃밭으로 가꿔서 농사일을 열심히 하셨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감자, 고구마, 콩, 팥, 마늘, 브로콜리, 호박, 무를 재배하면서 채소는 굳이 시장에 가서 사오지 않아도 자급자족으로 수확해 왔으니 하루도 쉬지 않고 살아온 노고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형수님은 형님과 함께 거리에 나갔다가 제주영락교회 부근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지나는 순간 지나가는 차량에 치여 왼쪽 어깨와 팔을 다치셨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큰 부상은 면하고 병원에서 1년가량 입원했다가 완치돼 퇴원하신 후에도 쉴 사이 없이 수확 시기에는 밀감밭에 나가 하루 종일 일을 했습니다.

형수님께서는 부지런히 살아오시던 중 지금부터 8년 전 찌는 듯한 삼복 더위에 삼양해수욕장에 혼자 모래찜질하러 가셨다가 일사병인지 그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형수님이 어떻게 운명했는지조차 몰라 경찰에서 지문채취를 통해 형수님의 사망소식을 접했습니다. 왜 혼자 해수욕장에 가셨나요? 제 아내와 같이 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생각하며 형수님을 원망도 해보았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형님과 함께 편히 쉬면서 영생 복락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동생 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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