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참전기간(1951년 7월19일∼1954년 10월18일) 부상자를 치료 중인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NORMASH) 의료진.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 제공
6·25전쟁 참전기간(1951년 7월19일∼1954년 10월18일) 부상자를 치료 중인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NORMASH) 의료진.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 제공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선의용대 소속 독립군 손일봉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선의용대 소속 독립군 손일봉 선생.국가보훈처 제공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선의용대 소속 독립군 이정순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선의용대 소속 독립군 이정순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선의용대 소속 독립군 최철호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2021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조선의용대 소속 독립군 최철호 선생. 국가보훈처 제공
의사 간호사 등 연인원 623명 파견… 9600차례 수술, 입원환자 1만4755명
손일봉 선생 등 조선의용대 4인 ‘7월 독립운동가’


국가보훈처는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NORMASH)을 ‘7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노르웨이 이동외과병원은 1951년 7월 19일부터 1954년 10월 18일까지 3년 3개월 동안 운영됐다. 의사 80명, 치과의사 5명, 간호사 33명을 포함해 연인원 623명이 파견돼 전쟁에서 다친 장병을 치료했고,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는 민간인 치료에 전념했다. 참전 기간 크고 작은 수술을 총 9600차례 실시하는 등 하루 평균 8차례의 수술을 했고, 치열한 전투 시기에는 하루 최다 64차례의 수술을 하기도 했다.

1954년 10월 철수할 때까지 이 병원에 입원한 환자는 총 1만4755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4317명이 완치돼 퇴원했고, 이 병원에서 숨진 환자는 150명으로 전체 환자의 1.2%에 불과했다. 각 제대의 근무 기간은 6개월이지만, 다수의 의료진은 복무기간을 연장해 1∼2년 동안 근무하면서 여가를 이용해 서울에 있는 민간병원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보훈처는 전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병원이 철수한 이후에도 스웨덴, 덴마크 정부와 함께 한국 국립의료원의 설립과 운영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보훈처는 광복회, 독립기념관 공동으로 손일봉·최철호·박철동·이정순 선생 등 4명을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들은 1938년 창설된 조선의용대에 참가해 1941년 12월 중국 화북성 호가장 전투에서 전사했다.

평북 의주 출생인 손일봉 선생은 3·1운동에 참여한 부친을 보며 독립운동의 꿈을 키웠다. 의주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1934년 일본군 사령관 폭살 계획에 참여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육군군관학교에 입교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무장선전대 제2분대장이 돼 일본군과 싸웠다. 최철호 선생은 대전 제2공립고등학교와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창설 일원으로 활동했다.

충북 출신인 박철동 선생은 공립보통학교 때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민족혁명당의 지령을 받고 임무를 수행하던 중 체포돼 3년간 투옥됐다. 출옥 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의용대 1지대에 입대해 활동했다. 이정순 선생은 평북 벽동 출신으로 의열단 간부인 형(이영준·독립장 표창)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창설 일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의용대는 중국 만리장성 이남의 한국인 최초 군사 조직이다. 무장투쟁을 위해 화북지역의 태항산에 입산하면서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조직됐고, 이후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무장투쟁 및 선전 활동을 펼치는 무장선전대로 재편됐다. 정부는 1993년 4명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각각 추서했다.

정충신 선임기자
정충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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