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좋아하던 평범한 미국인
고교시절 한인회 잔치서 입상
상품이던 항공권으로 한국행
“할아버지 ‘KOREA 모자’ 지녀
TV보며 ‘많이 발전’ 늘 감탄”
“할아버지의 전우들 덕분에 한국에서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파란 눈의 트로트 가수 마리아 엘리자베스 리스(Maria Elizabeth Leise·21)가 6·25전쟁 71주년을 맞아 참전 유공자들을 위로하며 감사를 전했다.
마리아는 지난달 29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 워커힐 호텔 애스톤하우스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유공자 위로연’ 무대에 올랐다. 참석자들은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등장에 의아해했으나 “제 할아버지도 6·25전쟁 참전 용사이시며 한국에서 가수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와 전우들이 한국을 지켜주신 덕분”이라고 소개와 감사 인사를 전하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아는 이날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구슬프게 불렀다. 이 노래는 6·25전쟁이 휴전에 돌입한 후 3년 뒤인 1956년 발표된 곡으로, 미아리고개는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였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 국군과 인민군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장소다.
마리아가 절절한 심경을 담아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여’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자리를 지키고 있던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공연을 마친 그는 “전우의 손녀, 마리아가 드립니다”라면서 ‘6·25전쟁의 영웅께 감사드립니다’란 문구가 새겨진 기념품을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선물하며 다시 한 번 감동을 전했다.
K-팝을 좋아하는 평범한 미국인이었던 마리아는 고등학생 시절 ‘2017 뉴저지 한인회 추석 큰잔치’에 참가해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당시 한국행 항공권을 상품으로 받았고 혈혈단신 한국행을 택했다. “엑소랑 레드벨벳, 방탄소년단(BTS)도 좋아했다”는 그가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참전 용사인 할아버지 리로이 리스(Leroy Leise)의 영향이었다. 마리아는 “할아버지께서 지난해 9월, 아흔한 살 나이로 하늘의 별이 되셨는데, 8남매 가운데 두 형제가 6·25전쟁에 참전했다”며 “제가 어릴 때, TV에 한국 관련 뉴스가 나오면 ‘몰라보게 발전했다’면서 놀라워하시던 모습과 ‘KOREA(코리아)’ 글자가 쓰인 모자를 늘 곁에 두셨던 게 생각난다. 한국을 많이 사랑하셨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마리아는 올해 초 TV조선 ‘미스트롯2’에 출연해 12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었다. 특히 한국인보다 더 또렷한 한국어 발음과 섬세한 감정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는 정식으로 소속사와 계약도 맺고 트로트 가수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최근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그는 “할아버지께서는 전쟁 당시 폐허가 된 상황을 안타까워하셨지만 한국 사람이나 문화를 좋아하셨다”며 “한국 사람들이 제 할아버지의 참전 사실에 이렇게 감사를 표할 줄 몰랐다. 손녀로서 너무 자랑스럽고 감사하다”고 전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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