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규 하트웰의원 원장 前 대한의사협회장

‘수술 촬영 의무화’ 정치 쟁점
與는 여론 내세워 野대표 압박
의료 소비자 권리 주장도 증폭

고난도 수술 피하는 결과 초래
‘다소 위험 무릅쓴 최상 진료’
포기할지 말지가 문제의 핵심


지난달 11일 당 대표로 취임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게 여당의 원내대표가 던진 첫 질문은 ‘수술실 CCTV 의무설치법안에 대한 입장이 무엇인가’였다.

수술실 CCTV 의무설치법안이 정치적 이슈임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여당 원내대표는 질문에 앞서 “국민 10명 중 8명이 찬성하는 수술실 CCTV 설치법은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법안을 여당이 추진하고 있고 소수인 의사들만이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만일 이 신임 대표가 “찬성한다”고 하면 전통적 보수 지지자들인 의사들이 야당에 등을 돌리게 될 것이고, “반대한다”고 하면 국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법안을 반대한다며 야당을 공격할 좋은 명분이 생기니 여당으로서는 일석이조의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표는 신중론을 펼쳤고, 여당은 예상대로 이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 수술실 CCTV의 의무설치법안은 정치적 도구로 이용돼도 되는 것인가.

수술실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은 얼핏 타당성 있게 들린다. 수술실은 의료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병원의 공간 중에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고,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으니 이제 소비자가 정확히 알아야겠다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인천 21세기병원에서 있었던 병원 행정직들의 대리수술 사건은 이 주장의 당위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현재 수술실 CCTV 설치의 부작용을 걱정하며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은 의사협회 등 의사 단체들뿐이다. 그런데 의사들의 목소리는 ‘기득권 지키기다’ ‘구린 것을 감추려는 것이다’라는 비판을 받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세계의사회(WMA)가 대한의사협회에 수술실 CCTV에 대해 큰 우려를 제기하는 서신을 보내 왔다. 세계의사회는 ‘수술실 CCTV 의무설치는 의사·환자의 신뢰 관계를 지속적으로 해칠 것이며, 의사로 하여금 중증환자에 대한 고난도 수술을 주저하게 할 것이다. 이 법안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연상케 하며(Orwellian character)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세계의사회의 경고 중 특히 주목해야 할 내용은 ‘중증환자에 대한 고난도 수술을 주저하게 할 것’이라는 대목이다. 이 대목은 수술실 CCTV의 의무설치에 찬성하고 있는 대다수 국민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수술실에 CCTV를 의무설치하고 환자 또는 환자의 가족이 이 자료에 대한 접근 권한을 확보한다는 것은 의사가 수술하는 동안 그 장면을 환자 또는 환자의 가족이 수술실에 들어와 의사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약 환자의 가족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수술을 해야 한다면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수술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의사가 얼마나 될까.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의사는 수술에 집중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다소의 위험이 있지만 환자에게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는 최선의 수술’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환자에게 최선이 아닐지라도 잘못됐을 경우 의사가 추궁당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수술 방법을 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위험도가 높은 중증환자의 수술을 기피하게 될 것이다. 지금 수술실 CCTV 의무설치의 부작용으로 수술 영상의 유출만이 거론되고 있고, 이것은 강한 처벌을 통해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알려지지만, 의도적인 유출이 아닌 해킹에 의한 피해는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뒤돌아보자.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이론은 소득 하위층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한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은 부동산 가격 폭등을 초래했다. 친(親)환경을 앞세운 탈(脫)원전은 가장 반(反)환경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 모두가 전문가들의 면밀하고 정확한 의견을 무시했기 때문에 벌어진 부작용들이다. 수술실 CCTV 의무설치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 법안이 강행될 경우, 의사들은 어떻게든 적응할 것이다. 의사는 10여만 명에 불과하고 환자는 5000만 명이 넘는다. 다만, 득도 피해도 모두 국민의 몫이다. 의사들은 전문가로서의 의견만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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