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홍진 제작한 태국판 공포물
무당 후손 주제 다큐처럼 촬영
초반 1시간 밋밋하게 흐르다
미스터리로 장르 확 바뀌어
‘공포’ 넘어 ‘괴이함’느껴져
‘랑종’은 태국어로 무당이라는 뜻이다. 태국 북동부 이산이라는 낯선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신내림이 대물림되는 무당 가문의 피에 관한 기록을 그리고 있다. 나홍진 감독이 원안 시나리오와 제작 프로듀서를 맡고, 태국의 호러 전문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을 담당해 제작 초기부터 관심을 모았다. 나 감독은 ‘추격자’ ‘황해’에 이어 ‘곡성’으로 이전과는 다른 관점과 비주얼의 공포영화를 보여줬고, 반종 감독은 ‘샴’ ‘셔터’ 등으로 태국 호러의 전성기를 열었기 때문이다. ‘셔터’가 그랬듯이 ‘랑종’이 얼마나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할지, ‘곡성’처럼 얼마나 초자연적 공포와 미스터리를 던져줄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의 초반은 지루할 만큼 밋밋하다. 마치 KBS 교양 다큐멘터리 ‘걸어서 세계속으로’의 ‘태국 무당’ 편 같다. 이산의 지역적 특색과 현지인의 삶, 바얀이라는 신을 믿는 무당 님의 일상을 소개한다. 이곳 사람들은 집 안, 숲, 산까지 모든 것에 혼이 깃들어 있다고 믿고 있다. 그중 최고 신이 바얀이고 바얀에게 기원할 일이 생기면 님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평상시엔 님도 보통사람처럼 옷 수선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한다. 영화 속 다큐멘터리팀이 이 모든 걸 ‘랑종의 후손들’이라는 주제로 촬영한다는 설정에서다. 한때 리얼리티를 높이기 위해 공포영화에서 자주 채택했던 ‘페이크 다큐’ 형태다.
이렇게 1시간 가까이 ‘수려하고 예술적인’ 장면들을 보여주던 영화는 님의 조카이자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20대 여성 밍이 ‘신병’처럼 보이는 이상증세를 나타내면서 점차 장르를 공포와 미스터리로 바꾼다. 그리고 밍과 님의 가족에 얽힌 사연, 님과 밍의 엄마 노이의 신내림 과정에 대한 과거가 하나둘 밝혀지고 반전을 거듭하며 퇴마 의식이라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공포가 사실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는 대목은 촬영팀이 밍의 이상증세를 CCTV로 촬영해 관찰하는 부분부터다. ‘관찰 카메라’ 같은 영상 속에서 밍이 하는 실로 이상한 행동은 직접 전달되는 것보다 훨씬 리얼한 충격을 준다. 기본적으로 호러영화 특유의 관객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이 몇 개 있다. 하지만 공포보다는 괴이함과 끔찍함이 더 맞을 것 같다.
뭔가에 ‘빙의’된 듯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들이 이어진다. 스포일러라서 열거할 수 없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다. 오죽했으면 ‘추격자’로 잔혹성의 극단을 보여준 나 감독이 “반종 감독이 원하는 대로 다 찍었으면 상영이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저는 말리는 입장”이었다고 할까. 반종 감독도 표현 수위에 대해 언쟁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잔혹함이나 선정적 장면을 팔아서 하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태국의 낯선 배우들이지만 님 역의 싸와니 우툼마, 밍 역의 나릴야 군몽콘켓의 연기는 빼어나다. 특히 나릴야는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뚫고 발탁돼 혼신의 연기를 보여줬다. 빙의된 나머지 온몸이 피폐해져 가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10㎏을 감량했다고 한다.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동작은 ‘곡성’ ‘부산행’에서 좀비의 움직임을 창조했던 박재인 안무가의 지도를 받아 완성했다. 연기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나 감독이 의도했던 대로 영화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 태국 무당의 퇴마 의식만으로도 차이점이 뚜렷하다. 그러나 ‘곡성’의 그림자가 곳곳에 비친다. 신병을 앓고, 신내림을 받는 것은 한국 무속신앙과 똑같다. 특히 빙의된 밍의 태도는 ‘곡성’에서 종구(곽도원)의 딸 효진(김환희)을 연상시킨다. 효진은 “뭣이 중한디”라며 악을 쓰고 칼부림을 하고, 밍은 “내가 누구인지 네가 맞혀봐”라며 으스스한 행동을 일삼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면 ‘곡성’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궁극적인 질문에 닿게 된다. 왜 나 감독은 이런 영화를 다시 쓰게 됐을까.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소통하고 싶었을까. 이는 “무속신앙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반종 감독은 무속신앙이나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정반대다. 사무실에 귀신이 있다고 해서 무서워서 일찍 집에 가는 사람이다. ‘곡성’을 찍기 전에는 전국의 무당이 많이 모인다는 두타산에 가서 취재한 적이 있다. 너무 궁금해서 나도 기도하고 절하면서 산속에서 한 달 이상을 보냈다. 신, 초자연적 존재를 믿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서양의 단순한 공포영화와 나 감독의 호러가 다른 부분이다. 국제 간 협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의외로 제작비가 적게 들었다. 14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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