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尹전선’ 주도 · ‘親文 잡기’ 겨냥

■ 이재명이 불지핀 ‘역사논쟁’

李 ‘미 점령군’ 언급은 고도로 준비된 발언… ‘기본소득 논쟁’ 이어 대선 국면서 ‘이슈 주도권’ 노려
‘비주류 싸움꾼’ 기질 발휘해 ‘反윤석열 전선’ 구축… 친문 지지 확대로 경선-대선 승리 발판 구축 의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 유력 대권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야권은 한목소리로 대한민국의 출발을 부정하는 역사인식이라며 강하게 비난했고, 여당 일각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마침내 야권의 대선주자 지지율 1위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역사 왜곡 절대 용납 못 한다”며 처음으로 이 지사를 때림으로써 역사논쟁은 ‘이재명 vs 윤석열’ 대립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지사의 이어진 대응 등으로 미뤄 ‘미 점령군’ 관련 언급은 실언이 아닌 준비된 발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왜 느닷없이 역사논쟁에 불을 지폈을까. 그가 8·15해방 전후 시기의 역사적 진실을 따져보자는 계산을 한 것 같지는 않다. 비주류 출신의 ‘타고난 싸움꾼’인 그는 ‘역사 도발’을 통해 ‘기본소득 논쟁’에서 보여준 ‘이슈 오너십’을 재확인하고 ‘문재인 정권 친화적 역사관’을 드러내 반윤석열 전선을 주도함으로써 친문(친문재인)의 지지를 얻겠다는 노림수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사는 ‘미 점령군’이 여야 내부의 논란을 부르는 것조차 자신의 대권가도에 정치적 이득이 된다는 점을 계산했을 것이다.

◇비주류의 ‘이슈 오너십’

이 지사의 역사 도발엔 먼저 그의 개인적 성향이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 때에도 자신의 정체성을 비주류라고 털어놨다. 주류를 단순 추종하거나 그들의 비판을 겁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여권 내 대선 주자 중 단연 1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어젠다를 제기해 도전하는 리더의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이슈 오너십’ 전략이다.

여야의 모든 대선 주자가 문재인 정부의 ‘뻔한’ 주제에 대한 평가에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 해방 공간에서 미군의 위상이라는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 것은 언론과 유권자들의 이목을 끄는 신선한 정치 행위다. 비주류 정치인으로 자부하는 그만이 제기할 수 있는 독점적인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슈 오너십을 가질 수 있는 주제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포함돼 있다. 미군의 점령군 위상과 관련한 역사 이슈는 적폐 청산이라는 민주당의 개혁 목표와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이 깨끗하게 출발하지 못한 이유가 건국의 주역이 될 자격이 없는 친일세력과 미 점령군의 결탁에 있으며, 이후 대한민국에 잔존하는 적폐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은 친일 청산의 훌륭한 명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논쟁은 민주당의 정치개혁 목표를 옹호하는 것이며 위축된 민주당 지지자들을 고무시킬 수 있는 이슈로 작용한다. 이뿐만 아니라 이 지사는 1953년 이후 미군의 한반도 주둔의 합법성을 인정함으로써 미군철수를 포함한 과도한 이념논쟁으로부터 피해갈 수 있는 여지도 남겨뒀다.

◇친문 지지 겨냥한 메시지

이 지사는 또 이번 논쟁의 제기자로 미국에도 당당할 수 있는 대선 후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운동 때 “미국을 가본 적이 없다”고 발언해, 지지자들에게 대미 관계에 자신감을 갖는 지도자로 인식되는 데 성공했다. 이 지사는 자신의 미 점령군 발언이 무비판적인 친미를 경계하는 의도로 받아들여지기만 한다면 보수세력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진보 결집 효과도 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진보 유권자들이 갖는 대미 인식의 핵심은 외교에 있어 두 나라가 평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진보는 보수가 보이는 미국에 대한 태도를 종속적이라고 비판한다. 미국의 부당한 요구에는 당당히 대응하는 리더가 바람직한데, 자신처럼 과거 미국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소위 친문·진보 지지층의 바람에 부합한다는 계산이다.

나아가 이 지사는 당내 경선을 앞두고 역사 도발이 자신에 대한 주류 친문 진영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문 정부 국정 운영에 대한 국민평가는 긍정보다 부정이 높고, 정권 재창출보다 교체를 원하는 응답자가 과반을 차지하지만, 여전히 당내 주된 여론은 친문이 장악하고 있다. 친이(친이재명) 세력의 지지만으로 경선 결과를 낙관할 수는 없다.

이 지사는 당내 대선 경선에서 과반 득표를 하지 못하고 친문 주자들이 결집하면 결선투표에서 패할 가능성도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경선에서 이기고 내년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친문세력의 지지를 확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지사가 친문의 정서와 공감대를 높이기 위해 ‘미 점령군’과 ‘친일세력’을 부각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이 vs 윤’ 대결구도 셈법

이 지사가 역사 도발을 통해 의도한 또 하나의 노림수는 윤 전 총장과의 대결구도 만들기다.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후 본격적인 첫 정치 코멘트가 이 지사의 ‘미 점령군’ 발언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의도는 적중했다. 윤 전 총장이 이 지사의 발언에 대해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셀프 역사 왜곡” 등으로 거칠게 나올수록 이 지사와 친문 진영은 결합할 것으로 보인다. 윤 전 총장은 친문에는 현 정권을 수사하고 조국을 범죄인으로 만든 ‘원수’이기 때문이다. 이 지사는 윤 전 총장과의 대결에 집중할수록 다른 주자들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게 된다는 점도 노렸을 것이다.

거꾸로 ‘윤석열 vs 이재명’ 대립구도는 윤 전 총장 측에서도 나쁠 게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보수 지지세를 자신에게로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뿐 아니라 장모·아내에 대한 검증이 사나워질수록 주의 환기용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윤석열 대립은 두 사람 모두에게 적대적 공생을 보장해주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

이 지사 캠프에 합류한 외교·안보 원로들과 책사들의 정치적 성향을 볼 때 ‘미 점령군’은 이미 내부에서 검토되고 조율된 발언으로 분석된다. 당연히 발언이 가져올 정치적 이해득실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고, 결코 손해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 또한 섰을 것이다. 싸움꾼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친문 세력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윤 전 총장과의 대결구도를 형성하는 게 대권 레이스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지사는 당내 경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위해 주류 친문의 이념적 성향에 호소할 수 있는 선명한 입장을 내세우는 게 필요했다.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보면 그는 기본소득 이슈와 더불어 미 점령군 이슈에서 오너십을 갖게 됐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장


■ 세줄 요약

비주류의 ‘이슈 오너십’ : 李의 ‘미 점령군’ 발언은 비주류 싸움꾼의 특성을 살려 늘 도전하는 리더 이미지를 구축하겠다는 ‘이슈 오너십’ 전략. 더불어민주당의 정치개혁 목표를 옹호하고 지지자들을 고무시키는 효과를 노림.

친문 지지 겨냥 메시지 : 美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이고 친문 지지층의 바람에 부합하려는 계산도. 친문 정서를 자극하고 공감대를 높이려 ‘미 점령군’과 ‘친일세력’을 부각해 보수에 대한 공격 기제로 삼음.

‘이 vs 윤’ 대결구도 : 李는 尹과의 대결구도로 ‘反尹’ 전선을 주도하겠다는 이미지 심어. 尹 역시 장모·아내 등 검증 논란의 출구가 필요한 상황. 결국 ‘미 점령군’은 손해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진행된 계산된 발언임.


■ 용어 설명

‘이슈 오너십(issue ownership)’은 선거 등 정치 경쟁에서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경쟁자들보다 해결 능력이 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하고 주도권을 이끌어 가는 것 또는 그런 행위.

‘결선투표’는 민주당의 대선후보 선출 룰을 말함. ‘컷 오프’에서 살아남은 6인 주자가 본경선을 벌이는데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 2위 간 결선투표를 실시. 이때 표의 이합집산이 승패를 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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