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문(1954∼2010)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놀 때가 가장 좋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런 저를 항상 무릎에 앉혀 놓고 예뻐해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품이 제겐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보호막과도 같았죠. 그래서 오빠와 장난을 치다가도 아버지 품으로 달려가 무릎에 앉았던 적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저를 안아주셨죠. 하지만 제가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아이가 무릎에 올라와 노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됐습니다. 예쁜 아이들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탓에 이제 무릎에 아이들이 올라오려고 하면 저도 모르게 손을 받치게 됩니다. 이런 작은 일상에서 새삼 아버지의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아마도 아버지가 계셨다면 혈기왕성한 사내 녀석 셋의 육아를 직접 하겠다고 말씀하셨을 겁니다. 워낙 아이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가 딸을 닮은 외손자들을 얼마나 더 예뻐하셨을지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종종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들이 직접 만나보지 못한, 이야기로만 만날 수 있는 외할아버지기에 더욱 애틋한 감정을 가진 듯합니다. 그럴 때마다 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줍니다. 외할아버지는 덩치는 작았어도 못하는 게 없는 슈퍼맨이었다고.

아버지는 하나뿐인 딸의 결혼을 누구보다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병환으로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딸이 가장 행복한 모습을 하늘에서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생전 가장 예뻐하셨던 오 서방이 결혼식장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께 쓴 편지를 읽었죠. 그때 결혼식장을 찾았던 제 친구 모두가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편지를 읽던 오 서방도 살짝 울먹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울지 않았죠. 아버지가 딸의 결혼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계실 거라는 걸 알았으니까요. 아버지가 하늘에서 든든하게 지켜봐 주신 덕에 저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지금껏 별다른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크는 것도 많은 도움을 주시는 시부모님과 엄마, 그리고 하늘에서 항상 살펴주시는 아버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더운 여름엔 수박이며, 참외며 제가 좋아하는 과일을 잔뜩 사 오셔서는 먹으라고 내어주셨던 아버지. 그런 마음도 모르고 친구들과 집 앞 골목에서 놀고만 있던 저를 불러다 입에 과일을 넣어주시고는 다시 나가 놀라고 하셨던 아버지. 이제는 제가 그렇게 아이들에게 밥을, 과일을 먹이고 있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고, 또 같은 행동을 하면서 이제야 그때 아버지가 왜 제 입에 과일을 넣어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같은 음식이라고 해도 내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제가 아이를 키우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시부모님과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하실 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제 저는 어느덧 무릎에 저를 앉혀주시던 아버지의 나이가 됐고,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아버지의 무릎에 올라가 신나게 놀던 그때의 제 나이가 됐습니다. 열대야가 시작되며 밤잠을 뒤척이기 시작한 요즘,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아버지의 하나뿐인 딸 새로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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