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숙 논설위원

‘해전사’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은 1979년 10월 출간돼 발간 열흘 만에 4500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해방 전후의 역사가 분단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다룬 책으로 출간 후 10·26사태가 나며 금서가 됐는데 1980년 서울의 봄 때 해금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1990년까지 총 6권이 시리즈로 발간, 모두 75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해방 전후의 정치·사회 운동과 1948년 정부수립, 6·25전쟁, 북한 정권 수립 등을 다룬 논문들이 실렸다. 80년대 대학가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책으로 꼽히면서 ‘86세대의 바이블’로도 불린다. ‘해전사’는 기본적으로 좌파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친일파 문제와 미군정기 정치·사회 운동을 분석했다. 남로당 활동에 대한 기술이 북한 중심적 시각이라는 비판도 있다. 냉전 붕괴 후 구공산권 사료가 새롭게 공개되면서 ‘해전사’에 기술된 6·25 남침유도설 등 팩트 오류도 많이 지적됐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2006)은 현대사의 좌파적 인식 극복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출간된 책이다. 서울대 박지향·이영훈, 연세대 김철, 성균관대 김일영 교수가 주도했는데 2007년 대선을 전후해 힘을 얻은 뉴라이트 운동의 사상적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 이후 연세대 김호기, 서울대 강원택, 중앙대 장훈, 이화여대 박인휘 교수 등 4인은 탈냉전과 세계화를 키워드로 냉전 이후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탈냉전사의 인식’(한길사·2012)을 냈다. “좌파적 해전사와 우파적 재인식으로는 변화된 세상을 해석할 수 없다”는 게 저자들의 인식이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해전사’ 세대 중도진보 학자들의 자기 극복 노력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학계에서는 지난 30년간 해전사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및 한계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며 극복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재명 경기지사가 난데없이 역사의 시곗바늘을 80년대로 되돌려버렸다. 그 자신이 86세대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해전사적 역사관을 고수하는 것은 퇴행적으로 보인다. “친일 세력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서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는 역사 인식은 너무도 단편적이다. ‘깨끗하지 못한 출발’ 운운하며 대한민국 건국을 부끄러워하는 이가 대한민국 대통령을 꿈꾼다는 것은 역사의 코미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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