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고군분투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는 이 총재의 두툼한 서류뭉치에 한국 경제의 현실과 미래가 담겨 있다.   자료사진
코로나19 사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금융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고군분투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는 이 총재의 두툼한 서류뭉치에 한국 경제의 현실과 미래가 담겨 있다. 자료사진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요직마다 다 거친 ‘정통 한은맨’
BIS가입후 사상 첫 이사로 선임

韓銀 내부 ‘화 안내는 총재’ 인식
결정땐 정권에 끌려다니지 않아

연일 한국 자산버블 경고 나서
통화정책 통한 대응책 마련도


“중앙은행 수장들은 보수적 집단이다. 그 어떤 나라의 원수도 경솔하고 모험을 즐기는 성향의 인물에게 경제 전체에 대한 통솔권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중앙은행 수장이 성급하게 시도하면 그 나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수석 경제전문 기자인 닐 어윈은 저서 ‘연금술사들’에서 중앙은행 수장에 대해 이렇게 기술했다. 세계열강은 금융 강국을 전제로 등장하며, 배경에는 효율적인 중앙은행이 있었다고 어윈 기자는 분석했다. 19세기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에는 런던이라는 세계 금융수도가 있었고, 런던이 금융수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이 있었다.

중앙은행은 그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금융기관이다. 1980~1990년대 버블(거품)이 극에 달했던 일본 경제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실패로 ‘잃어버린 30년’을 맞게 된 사례는 중앙은행이 국가 경제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이 때문에 요즘 금융시장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바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다. ‘코로나19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선진 금융시장으로 발돋움해야 하는 책무가 그의 어깨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최근 스케줄을 정교하게 구상한 듯, 직접 메시지를 발신하는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한국경제가 처한 위태로운 상황에 냉철한 통찰과 분석을 제시하며 정부에는 철저한 대비책을 조언하고 있다. 가장 적절한 시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결단의 리더십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한국경제 버블 붕괴 막을 ‘버블 파이터’=시장은 이 총재를 주시하고 있다. 버블이 가득 낀 경제를 연착륙시켜달라는 주문이다. 이 총재도 직접 나서 ‘버블 경고장’을 날리는 장면을 연이어 연출하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창립 기념사를 통해 “우리 경제가 견실한 회복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면 현재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향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향후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황과 주요국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변화 등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어 필요 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적기에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열렸던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는 “지금 상황에서 금리를 한두 번 올려도 통화정책은 실물 경제에 비해 상당히 완화적”이라며 “연내 늦지 않은 시점에 통화정책을 질서 있게 정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공식적으로 연내 금리 인상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이 총재가 이렇게 금리 인상에 대한 발언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이유는 많다. 특히, 이 총재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위기 상황에 이른 자산 거품에 따른 금융 불균형이다. 3월 말 기준 1765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규모는 한은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자산가격 총지수는 91.7로, 외환위기(1997년 2분기 93.1)나 글로벌 금융위기(2007년 3분기 100.0) 당시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이 총재의 이런 메시지에 전문가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12일 “이 총재가 금융 불균형에 우려를 표하면서 내놓은 연내 금리 인상 시사는 향후 한은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뿐 아니라 ‘자산가격 버블 파이터’로도 나서겠다는 점을 부분적으로 시사한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이 총재의 입장 표명은 한은 역사에 하나의 중대한 변화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하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에만 얽매이지 않고, 금융 불균형으로 대표되는 자산 시장 거품에 대해서도 통화정책을 통해 적극 대응할 수 있다는 공개적인 신호를 시장에 줬다는 해석이다.

◇가장 화려한 경력의 한은 총재=이 총재는 경력이 화려하다. 1977년 입행한 ‘정통 한은맨’인 그는 한은 내에서는 커리어를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 총재 자리에 오른 이 총재는 문재인 정부를 거쳐 연임에 성공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두 정권을 거치면서 한은 총재를 연임한 경우는 그가 처음이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 내 최고 요직인 조사국장과 정책기획국장(현 통화정책국장)은 물론, 부총재보와 부총재를 모두 지낸 데다 총재까지 연임한 경우는 전무후무하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또 한은 총재 최초의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 이사이기도 하다. 2018년 11월 스위스 바젤에 있는 BIS 정례 이사회에서 이사로 선출됐는데, 한은 총재가 BIS 이사에 선임된 것은 1997년 한은이 BIS에 정식 가입한 이후 처음이다.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불리는 BIS에는 세계 60여 개국 중앙은행이 활동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이 총재가 BIS 이사가 된 후 ‘BIS 이너서클’에 들어가게 됐고, 이를 계기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들과 친분이 두터워졌다”고 설명했다.

◇온화함과 뚝심을 겸비한 리더십=이 총재는 한은 내에서 세심하고 온화한 스타일로 평가받고 있다.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는 “절대 화를 내거나 강압하지 않고 온화한 총재”로 회자된다. 반면, 섬세한 성격 때문에 세세한 내용까지 다 챙겨야 해 직원들이 늘 긴장해야 한다는 소리도 나온다.

뚝심과 강단도 있다. 통화정책을 시행하면서 절대 시장에 끌려다니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한국판 양적 완화’ 공약을 내세운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이 자본확충펀드를 통해 한은이 국책은행에 직접 출자토록 한 요구를 막아낸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하다. 당시 조선·해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한은이 직접 돈을 찍어내(발권력) 출자하라는 요구였는데, 당시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한은을 압박했다. 그러나 이 총재는 “직을 걸고 막겠다”며 맞서 여당 계획을 무산시켰다. 사실상 회수가 불투명한 직접출자 방식은 중앙은행 운영 원칙에 어긋난다는 소신에 따른 결단이었다. 2012∼2016년 금융통화위원을 지내며 이 총재와 함께 일했던 정순원 전 금통위원은 이 총재를 합리적이고 온화한 성향의 지도자로 기억했다. 정 전 위원은 “금통위 회의를 하면 항상 다른 금통위원들의 말을 먼저 듣고 자기 의견을 꺼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다른 위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합리적인 총재였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 금융시장이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을 맞고 있는 가운데, 온화함과 뚝심·강단을 지닌 이 총재가 과연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온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1952년 강원 정선 출생 △원주 대성고 △연세대 경영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대학원 △한국은행 입행(1977년) △조사부 국제경제실장 △조사국장 △정책기획국장 △부총재보 △부총재 △국제결제은행(BIS) 이사

임대환 기자 hwan9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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