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물, 극한 상황에 몰아넣은 후
‘나라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써”
정신을 차려보니 한밤중 외딴 산속. 젊은 여자의 시체가 눈앞에 있다. 더 기가 막힌 건 19년이 흘렀다는 거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혹시 이 여자, 내가 죽인 걸까. 데뷔작 ‘콘크리트’로 호평을 받은 하승민(40·사진) 작가의 ‘나의 왼쪽 너의 오른쪽’(황금가지)은 이렇게 시작한다. 소설은 1980년 광주를 시발점으로, 가상의 항구 도시에서 벌어지는 부정과 타락, 그 속에 얽혀드는 인간군상들을 그린다. 1년 만의 신작. 서사는 더 탄탄하고 시선은 더 날카롭다. 무엇보다 더 집요해졌다. 정유정, 김언수를 잇는 한국형 스릴러 작가로, 충분히 도전장을 내밀만 하다. “제2의 정유정이요? 어휴, 그분이 제 존재를 아시기만 해도 꿈같을 것 같은데요, 하하.” 하 작가를 최근 서울 중구 문화일보에서 만났다.
‘나의 왼쪽’과 ‘너의 오른쪽’이라면 두 사람이 나란히 섰을 때 맞닿는 위치를 말하는 걸까. 틀렸다. 하 작가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된 이 제목은 거울을 보는 ‘나’다. 즉, 절대 악수할 수 없는 두 개의 ‘자아’다. 하 작가는 “인물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은 후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하며 쓰는 게 무척 재밌다”고 했다. “기억을 잃고 다른 인격으로 살던 인물이 또 다른 자아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뭐고, 어떤 말을 할지…. 쓰다 보면 저도 몰랐던 ‘반전’이 보여요. 그렇게 스스로 흘러가는 게 스릴러라는 장르 같아요.”
두 편의 스릴러를 썼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정유정, 김언수, 천명관을 꼽았다. 그러나 하 작가는 반드시 스릴러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10년 넘게 몸담았던 정보기술(IT) 업계를 떠날 때도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배수의 진을 치는 심정도 아니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불면증을 치유하기 위해 매일 1∼2시간 글을 쓴 게 데뷔의 계기가 됐지만, 그는 늘 가장 좋아하는 걸 열심히 하고 있는 ‘상태’를 유지할 뿐이다. 데이터 분석, 금융·포털 마케팅 등 그는 IT 업계에서도 다양한 업무를 했고, 밴드와 격투기, 연극 등 취미 활동도 다채롭게 경험했다. 그는 “원하지 않는 것도 꼭 한 번은 한다”고 했다. 낯선 사람들과 어울린다거나, 싫지만 운동에 전념하거나 하는 식. “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라고 했다. “싸움(격투기)엔 재능이 좀 있었는데,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싫더라고요. 배우가 되고 싶었는데 연기는 참 못했고요, 하하. 지금은 온통 글 쓰는 것만 생각해요.”
특정 장르를 고집하지도, 전업 작가라고 스스로 단언하지도 않지만, 가고자 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재미있게 읽히고,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지닐 것. 스릴러 장르와 실제 역사적 사건을 채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1980년대생들은 1980년 광주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고, 심정적으로도 다소 멀다”면서도 “작가로서 꼭 한번 다뤄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다”고 했다. “앞선 선배 작가들이 이미 많이 다루셨지만, 또래 작가들에게선 잘 없는 것 같아요. 세대를 이어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 앞으로도 그렇게 글을 쓰고 싶어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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