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오는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고등학교 시절 정신적, 물질적으로 나를 도와준 가장 고마운 친구다. 농촌 외딴곳에서 태어나 힘들고 어렵게 공부했던 나는 농촌 생활이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도회지가 그립고,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연합고사를 치르러 처음으로 광주광역시 땅을 밟았다.
무작정 광주 시내 고등학교로 진학하다 보니 자취를 하기 위한 방 얻을 돈도 없어 학교 진학을 포기할까 생각했다. 그러다 다행히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분의 자제인 김백중 친구가 광주에 자취방을 얻어 혼자 생활하기에 그 친구와 함께 자취 생활을 하면서 같은 고교를 다녔다. 팍팍한 자취 생활을 하다 보니 연탄불은 항상 꺼져 있고, 툭하면 밥을 굶어 점심시간이면 친구들 몰래 수돗가로 가서 수돗물로 굶주린 배를 채우기 일쑤였다.
이런 학교생활은 계속됐고 수업료를 내지 못해 수시로 교무실로 호출됐다. 신문 배달을 하면서 학교에 다니려니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먹지도 못하고 돈도 없으니 학교생활이 재미가 없고 성적도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러다 졸업했지만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었다. 굶주림을 참고 혼자서 극복해 나가야만 했다.
며칠 동안 밥도 못 먹어 힘들고 오갈 데도 없어 전남대 사범대학 사학과에 진학했던, 전남 함평이 고향인 동창 김병오의 자취방에서 한동안 밥을 얻어먹으며 지냈다. 미안하고 고마운 친구였다. 하지만 친구 신세만 질 수가 없어 무작정 서울로 와서 신문 배달을 하며 생활하다가 군대에 입대했다.
현역 군 복무 3년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니 취직할 데가 없어 행사장이나 전시장, 백화점에서 주차안내 등 임시직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러다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주경야독으로 서울시 행정직에 합격했다. 독서실에서 숙식하면서 남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 방송통신대와 중앙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지방자치대학원을 다니면서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정년퇴직을 하게 됐다.
고마웠고, 잊을 수 없는 친구인 병오를 찾기 위해 서울교육청과 동창들에게 수소문했더니 서울 송파중학교에서 국사 선생님을 하다가 일본으로 유학 갔다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후 44년 세월이 지났건만 동창 모임에서도 찾아보고 교육청에도 알아보고 심지어 설과 추석에 친구의 고향 주소에 편지도 보내봤건만 아직까지 못 만나고 있다.
동창들 말에 따르면 친구가 멀리 이민 간 것도 아니고, 말 못할 사정으로 친구들을 한 명도 만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던 나를 무시하지 않고 배려해준 그 친구 병오를 살아 있을 때 꼭 한 번이라도 만나봤으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 병오야, 엄청 보고 싶고 그립다.
이응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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