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제 경쟁력 증진’ 행정명령
사실상 빅테크 주타깃이지만
항공·제약 등서도 독점 심각
구글 검색 시장 점유율 88%
애플 모바일 OS 61% 점유
신생 경쟁사 M&A 통해 제거
진입장벽 구축해 지배력 강화
거대기업 R&D투자 무시못해
규제 강화땐 자칫 혁신 위축
소비자 서비스 축소 우려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기술과 제약, 농축산, 운송, 보험, 고용 등 거의 전 산업 분야에서 독과점과의 전쟁에 들어갔다. 거대 기업의 시장지배력을 약화시켜 신생 기업의 시장 진입과 경쟁을 촉진하고, 제품가격을 떨어뜨려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안겨주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기업들의 연구·개발(R&D) 축소를 불러와 경쟁력을 약화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이 받는 각종 무료 서비스 등 혜택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빅 테크’의 진입장벽 형성과 독과점 구축 실태=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일 시장 경쟁 촉진과 지배력 제한에 중점을 둔 ‘미국경제의 경쟁력 증진에 관한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했다. 그는 “미국 자본주의의 핵심은 개방적이고 공정한 경쟁”이라며 “독과점업체들의 폭력적 행위에 대한 관용은 더는 없다”고 밝혔다. 독과점과의 전쟁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과 동시에 예견됐던 일이다.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각종 규제 완화로 거대 기업 지배력이 강해지면서 기업의 혁신과 경쟁이 사라지고 있다고 보고 거대 기업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정부 기관들의 권한으로 경쟁을 촉진할 것을 주장한 책·논문을 써온 팀 우 컬럼비아대 교수를 국가경제위원회(NEC) 대통령 기술·경제정책 특별보좌관, 예일대 로스쿨 재학 중이던 2016년 27세의 나이에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 논문을 발표해 아마존 킬러로 불린 리나 칸 컬럼비아대 교수를 역대 최연소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임명해 이러한 방향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미국경제의 경쟁력 증진에 관한 행정명령은 거의 모든 산업 분야를 겨냥하고 있지만 핵심 타깃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한때 기술혁신 총아로 불리던 5대 빅테크는 시장지배력을 넓히면서 진입장벽을 구축하고 신생 기업의 싹을 자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거래가 급증하면서 빅테크의 시장경쟁력은 더욱 강화됐다.
빅테크의 빠른 성장에는 시장지배력을 활용한 진입장벽 구축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빅테크는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거나 무료인 서비스를 제공해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또 신기술을 선보인 신생 기업은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경쟁자를 제거해왔다. 최근 10년간 5대 빅테크는 10억 달러(약 1조1512억 원) 넘는 대형 M&A를 25건 진행했다.
미 하원은 지난해 10월 공정경쟁 보장 약속을 준수 중인 MS를 제외한 나머지 4대 빅테크가 독과점을 통해 경쟁을 훼손하고, 소비자 권익과 언론자유 등을 해치고 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경쟁제한 행위로 페이스북의 경우 신생 경쟁기업 M&A, 구글은 외부판매자 콘텐츠 탈취 및 자사 검색엔진 스마트폰 기본 탑재, 아마존은 경쟁업체 M&A, 애플은 자사제품과 타사제품 간 차별적 관행 등이 지목됐다. 미국 내 36개 주 정부 및 워싱턴DC 검찰이 7일 구글을 자사 앱스토어를 통한 앱 시장 독점 혐의로 제소하는 등 빅테크에 대한 규제 강화도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빅테크가 R&D 투자를 통해 성장해왔고 시장 지배적 위치를 확보한 뒤에도 대규모 투자를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자칫 규제가 빅테크의 투자 의욕을 위축시켜 혁신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현재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R&D 투자규모는 232억 유로(26조6939억 원)로 전 세계 2500대 기업 중 1위다. 알파벳은 2017년부터 4년 연속 세계 R&D 투자 1위 자리를 유지 중이다. MS는 171억 유로로 2위, 애플이 144억 유로로 5위, 페이스북이 121억 유로로 7위를 각각 기록했다.
◇제약·농축산·운송·고용 등 전 산업에서 드러난 독과점 폐해=바이든 행정부의 주 타깃이 ICT 시장을 장악한 빅테크 기업을 향하고 있지만 다른 산업 분야에서 드러난 독과점 문제도 만만치 않다. 백악관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거대 제약회사들의 연평균 수익률은 15~20%로 다른 산업계의 수익률(4~9%)보다 훨씬 높다. 이는 신약 특허를 가진 제약회사가 복제약사들에게 시장 진입 포기 합의에 대한 반대급부로 경제적 대가를 지급하는 ‘역지불합의’를 통해 경쟁자를 제거하고 약값을 높인 덕분이다. 이로 인해 미국인들은 이웃 국가에 비해 같은 처방전에도 약값에 2.5배 더 쓰고 있으며, 제약사들은 이러한 높은 약값 덕에 매년 35억 달러의 이익을 얻고 있다.
항공에서는 아메리카, 사우스웨스트, 델타, 유나이티드 4개 사가 항공 시장의 64.7%를 장악하면서 수화물 및 취소 비용 인상 등을 통해 소비자 혜택을 줄여 수익을 올리고 있다. 또 2007년 10개 항공사의 식음료 판매 등 보조 수익은 12억 달러였으나 2018년에 352억 달러까지 올랐다. 농축산물도 독과점 피해가 증가하는 중이다. 바이엘 등 4개 회사가 세계 종자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면서 옥수수 종자 가격은 연간 30% 가까이 오르고 있다. 또 타이슨 프레시 미트 등 4개 회사가 미국 쇠고기 시장 83%를 차지하면서 매년 쇠고기 가격 상승에도 농부들의 가격 대비 수익률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고용 시장에서는 경쟁기업 취업을 제한하는 ‘비경쟁조항’과 각종 자격증 요구 등으로 인해 근로자들이 불리한 상황이다. 기업들이 요구하는 비경쟁조항에 영향을 받는 미국인 근로자는 최소 3600만 명에서 최대 6000만 명에 달한다. 또 1950년대 5%에 불과했던 미국 내 자격증 요구 직업이 최근 30%까지 늘어났다. 심지어 50개 주에서 동일하게 인정받는 자격증 비율은 5%도 되지 않아 노동자들의 주간 이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워싱턴=김석 특파원 su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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