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작곡가 도니체티

군대 입대해서도 작곡에 열중
33세때 ‘안나 볼레나’대성공
연대의딸·돈파스콸레 등 히트

슬픈 뉘앙스에 사랑 기쁨 노래
심오함속 위트‘극적효과’키워
베르디·푸치니 등에도 영향


‘벨칸토(bel canto)’란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bel) 노래(canto)’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소리로 노래’하는 이탈리아 전통 발성법을 이르는 말이다. 곡에 대한 감정 표현과 전달보다는 성악가 개인의 화려한 기교나 아름다운 음색, 풍성한 성량에 중점을 두는 가창법이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말에 생겨난 ‘벨칸토’ 발성법은 19세기 들어 마침내 ‘벨칸토 오페라’란 장르를 탄생시키며 그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벨칸토 오페라를 이야기하자면 그 토양을 다진 조아치노 로시니(1792∼1868)가 중요하지만 그 씨를 이어받아 꽃을 피워 낸 가에타노 도니체티(1797∼1848)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로시니를 필두로 하는 19세기 초반 벨칸토 오페라는 유쾌한 내용과 빠르고 명랑한 음악으로 점철돼 있었다. 하지만 도니체티는 유쾌함 속에 진지함을, 심오함 속에 위트를 녹여내 한층 더 깊은 극적 효과를 발휘해 벨칸토 오페라를 발전시킨 주인공이다. 이로써 이전까지 오페라 세리아(진지한 내용의 오페라)와 오페라 부파(희극 오페라)로 양분되던 장르의 경계를 허물게 되고, 이는 주세페 베르디와 자코모 푸치니에게 큰 영향을 발휘해 벨칸토 오페라뿐 아니라 19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 낭만주의 음악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된다.

도니체티는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의 베르가모에서 전당포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형편에서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에 열정을 품게 된다. 도니체티의 음악적 열정과 재능을 눈치챈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의 신부이자 음악감독인 요한네스 지몬 마이어는 도니체티에게 8년간 음악수업을 해주고 그가 볼로냐의 음악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준다. 리체오 필라르모니코 음악원에 입학한 도니체티는 2년간 작곡 공부를 하는데, 졸업할 때 이미 4편의 오페라를 완성해내며 전문 오페라 작곡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교회 음악가가 되길 강요했고, 도니체티는 아버지와의 갈등과 불화에 못 이겨 군대에 입대해 버린다. 그렇게 군에 입대한 도니체티는 오히려 오페라 작곡에 열중해 1818년에는 21세 군인의 신분으로 ‘보르고냐의 엔리코’를 완성했다. 제대 후 33세가 되던 1830년 마침내 작곡가로서의 대전환을 맞게 된다. 밀라노의 카르카노 극장에서 초연된 오페라 ‘안나 볼레나’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흥행과 센세이션은 이탈리아를 넘어 파리, 런던 등 전 유럽과 미국에까지 퍼졌고,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후 연달아 ‘사랑의 묘약’(1832) ‘람메르무어의 루치아’(1835) ‘연대의 딸’(1840) ‘돈 파스콸레’(1843) 등의 걸작을 발표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하지만 성공의 기쁨 뒤엔 절망이 뒤따랐다. 지병이었던 지독한 매독이 문제였다.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그는 결국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지만, 무려 75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그런 열정을 지녔던 이에게 성공과 함께 찾아온 야속한 운명이라니. 도니체티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남몰래 흘렸을까.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아리아 ‘남몰래 흘리는 눈물’


가에타노 도니체티가 1832년 작곡한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2막에 등장하는 네모리노(테너)의 아리아. 네모리노가 아디나(소프라노)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는 감격적인 장면에서 부르는 노래로 전 세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오페라 아리아 중 하나다. 구슬픈 제목과 아리아 전에 연주되는 애잔한 선율은 슬픈 뉘앙스를 풍기지만 곡의 내용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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