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전쟁 |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 교양인

종교재판·지하드 등 겪으며 ‘부정 이미지’
사랑·평화대신 공격성부터 떠올려
폭력의 근본은 인간의 탐욕서 시작되는데
정작 책임은 종교에 전가하려고해


근대 이전에 종교는 삶의 모든 장면에 스며 있었고, 인간 활동 전체와 이어져 있었다. 인간은 삶의 모든 순간에 가치를 부여하려는 충동을 벗어날 수 없고, 삶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망에 빠진다. 인간은 자기 삶이 더 근원적 의미에 닿아 있기를 갈망한다. 이러한 근원 충동, ‘영속 철학’은 모든 민족과 문명과 시대를 초월해 존재한다.

그러나 현대인은 종교에 대한 근본 불신을 품고 있다. 종교가 모든 폭력과 전쟁의 원인이라고 여긴다. 십자군, 종교재판, 이슬람 지하드 등 종교가 관여한 역사적 사건은 그 뚜렷한 증거다. 특히,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등 일신교가 문제다. “종교는 근본적으로 폭력적이다.” 이런 말이 공공연히 떠돈다.

세계적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신의 전쟁’에서 종교를 희생양 삼아 전쟁과 폭력의 책임을 면하려는 현대적 태도를 반박한다. 전쟁의 주원인은 늘 생존과 탐욕, 즉 빈약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의 배후에는 교회 권력을 확장하려는 교황의 야망이 있었고, 에스파냐 종교재판에는 내부 단합을 꾀하고 이단들 재산을 갈취하려는 탐욕이 있었으며, 30년 전쟁 때 사람들은 가톨릭과 신교도로 나뉜 게 아니라 수시로 제 이익에 맞춰 이합집산했다.

종교는 인간 진화의 산물이다. 우리는 다른 목숨의 희생 없이 생존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은 사냥, 도살 등 폭력을 행하면서도 그 주검을 연민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모순적 존재다. 인간 뇌에는 폭력에 쾌감을 느끼는 뇌, 타자와 협동하는 뇌, 의미를 추구하는 뇌가 갈등하면서 공존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한 폭력에 의미를 부여해 재미로 생명을 빼앗지 않게 제어하고, 희생된 주검에 대한 연민이 지나쳐 허무에 빠지지 않도록, 신피질의 능력을 써서 종교와 예술을 발명했다. 종교는 평화를 위해 나타났다.

최초의 종교 문헌들은 우리가 타고난 전사이자 질병과 죽음에 따른 허무를 이기지 못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러나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 인도의 ‘리그베다’와 ‘마하바라타’, 중국의 황제(黃帝) 신화와 ‘논어’, 히브리의 ‘구약 성서’ 등을 살펴보면, 종교는 ‘피로 물든 땅’에서 폭력을 부추기기보다 평화를 가져오려고 애써 왔다.

폭력은 종교가 아니라 사회 조직에 내재해 있다. 유목·농업·상업·산업으로 문명의 형태는 변화했으나, 어떠한 인류 사회도 다수의 노동을 강제해 소수를 위해 잉여를 생산하는 구조적 폭력을 넘어서지 못했다. 더욱이 인류사는 자신을 지키고 더 많은 노동을 확보하려고 이웃과 투쟁을 반복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폭력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종교와 폭력의 관계는 전체 사회 조직과 이어져 있다. ‘일리아스’나 ‘아트라하시스’ 등에서 보여주듯, 종교는 흔히 정치와 결합해 전사의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때때로 불교나 자이나교처럼 종교는 인류를 마음의 평정에 더 신경 쓰고 관용과 양보를 우선하도록 이끌기도 했다. 종교가 무엇을 말하느냐는 사회가 영향을 끼치고, 사회는 종교 없이 폭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정교분리를 말하는 근대 세속 국가도 종교를 쫓아내진 못했다. 민족과 국가라는 초월적 존재를 위해 폭력을 행하게 했을 뿐이다. 배경엔 늘 지배자의 탐욕과 자원 확보 경쟁이 있었다. 종교에 폭력의 책임을 떠넘기는 건 부당하다.

때때로 종교가 폭력을 선동하나, 주로 사회 격변에 따른 끔찍한 박해나 참혹한 불평등이 벌어질 때 한정된다. 지하드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슬람은 폭력의 근원이 아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와 자살폭탄테러는 십자군 전쟁 이후 지속된 서구 제국주의의 폭력적 침탈 탓에 생겨났다. 영국, 프랑스, 미국 등은 군대를 보내 수없이 학살을 자행하고 자원을 갈취해 아랍 내부의 가난과 불평등을 영속화했다. 삶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아랍인들은 오직 전투에서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얻을 수 있도록 내몰렸을 뿐이다. 이슬람에 책임을 묻는 것은 서구 국가가 저질러 온 야만 행위를 가리려는 책략에 불과하다. 신의 전쟁은 종교가 아니라 정치가 일으킨다. 746쪽, 3만4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