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로 인한 집중호우로 지난주 독일과 벨기에에서 170여 명이 숨지고 1000명 이상이 실종되자 탄소 감축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커지고 있다. 탄소중립 공감대가 확산하는 가운데 유럽연합(EU)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탄소국경세’ 도입 계획을 밝혔다. 유럽으로 수입되는 상품 중 EU 내 생산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해서는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시멘트·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와 같은 고탄소 배출 제품을 대상으로 2023년부터 시범 적용하고, 2026년부터 전면 실시한다는 내용이다.
우리에게 EU는 중국·미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무역 대상국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EU가 이산화탄소 1t당 30유로의 탄소세를 적용할 경우 관세가 약 2% 정도 늘어나 한국 경제에 10억6000만 달러(1조2000억 원)가 넘는 부담을 줄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국내 탄소 배출의 17%를 차지하는 철강 분야의 타격이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EU의 저탄소 정책이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행 중인 ‘탄소배출권 거래제(ETS)’ 등을 내세워 탄소국경세 적용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TS는 스스로 탄소 감축이 어려운 기업이 정부나 초과 감축을 달성한 기업으로부터 탄소배출권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실질적인 탄소 감축 없이 무늬만 감축’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ETS 같은 정책만으론 탄소국경세가 가져올 변화에 대처하기 어렵다.
EU의 탄소국경세 도입은 표면적으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새로운 관세(탄소국경세)로 최대 140억 유로에 이르는 추가 세원을 확보하면서 경쟁국의 EU 진입 장벽을 높여 유럽 내 제조업을 보호한다는 취지가 깔려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복귀하면서 2025년까지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는 공약을 밝혔다.
EU나 미국의 탄소국경세 추진은 무역시장에서 ‘게임의 룰’ 바꾸기다. ‘기후변화’와 ‘녹색경제’라는 화두를 선점하면서 신흥국 중심으로 재편됐던 제조업 헤게모니를 바꾸려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아래서 후발국들이 문턱 없이 선진국 시장을 자유롭게 공략하던 시대를 끝내고, 탄소중립으로 국제교역 시장질서를 재편하려는 게 탄소국경세 도입의 배경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당장 눈앞의 무역수지 악화만 최소화하고자 시도하는 단기적이고 임시적인 처방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신재생에너지와 수소전지 등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생산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 있도록 제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탈원전 정책도 재고해야 한다. 탄소 감축을 향한 제조업의 체질 개선은 장기적인 정부 정책과 지원, 그린 에너지를 도입하려는 기업의 지속적인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용광로 없이 철강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과 같은 새로운 공정은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엄청난 시간과 투자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ETS를 뛰어넘는, 그린 테크놀로지 도입을 유도하는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와 장기적인 정책 지원만이 탄소중립을 위한 국내 제조업의 체질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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