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송재우 기자
그래픽 = 송재우 기자
■ GIST 조정희·홍성현 연구팀 세계 첫 규명

‘非암호화 RNA’ 26개 발굴
Y염색체 조절 원리 찾아내
남녀 성비 1대1 균형 이뤄


아들과 딸을 결정하는 유전적 요인은 무엇일까.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의 경우, 아버지로부터 X 염색체를 가진 정자를 받는지 또는 Y 염색체를 가진 정자를 받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X 염색체와 합쳐 XX 수정란이 되면 딸, XY 수정란이 되면 아들이 된다. 따라서 X 또는 Y 염색체를 가진 정자의 양과 질은 출생 성비(性比)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원래 수정 당시 성비는 수컷 쪽으로 편중돼 있지만, 수컷 배아의 높은 유산율과 출산 후 높은 사망률로 인해 1대1에 가깝게 균형이 유지된다. 이렇게 딸·아들 비율을 적정하게 보전하는 유전적 메커니즘은 생명체 유지의 핵심이다.

한국연구재단은 광주과학기술원(GIST) 조정희 교수와 홍성현 대학원생 연구팀이 단백질을 만들지 않는 긴 비암호화 RNA가 출생 성비의 균형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6월 9일자에 게재됐다.

두 가닥의 핵산이 꼬인 형태의 DNA를 보유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체 세포핵에서 각각 난자와 정자를 만들기 위해 이중나선 고리가 풀리는 감수(減數) 분열이 일어난다. 그러면 한 가닥의 RNA 사슬이 되고 여기에 새겨진 생명의 조립법에 따라 단백질을 재결합시켜 다시 이중나선을 꼬면 원래의 성체 세포핵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을 전사(轉寫·transcription)라 한다. RNA 주형의 틀에다가 꼭 맞는 단백질 분자를 사진 찍듯 베껴낸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RNA 조립법에 따라 유전암호를 단백질로 번역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유전암호를 담은 RNA를 ‘전령(messenger) RNA’라 한다.

그런데 유전학자들은 RNA 사슬 중에서 전령 RNA와 달리 단백질 결합의 제조 명령서가 들어가 있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 ‘비암호화(non-coding) RNA’라 명명했다. 과거에는 한때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 취급을 받은 적도 있지만 점점 그 속에 숨은 중요한 역할이 밝혀지는 중이다. 이번에 연구진이 찾은 비암호화 RNA는 뉴클레오티드(염기, 인산 등으로 이뤄진 DNA와 RNA의 기본 구성단위) 200개 이상이 이어진 긴 형태로, 수컷의 정소(精巢)에서만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소는 정자가 만들어지는 고환을 의미한다. 연구진은 이 긴 비암호화 RNA를 ‘테쉴(Teshl, testis-specific HSF2-interacting long non-coding RNA)’이라 이름 붙였다. 테쉴은 Y 염색체를 가진 정자의 기능을 도와 출생 성비 균형에 관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정자의 생성과 기능에 관여하는 약 1000개의 정소 특이 유전자 중에서 주로 전령 RNA를 매개로 단백질로 번역되는 유전자만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던 주된 흐름에서 시각을 달리해 이룬 쾌거다.

연구팀은 먼저 긴 비암호화 RNA가 정소에 많은 점에 주목해 26개의 특이적 비암호화 RNA를 발굴했다. 이 가운데 사람에게도 존재하며 높은 발현량의 특성을 가진 테쉴에 특히 주목해 크리스퍼-캐스9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생쥐에서 테쉴 유전자를 제거한 동물 모델을 제작했다. 테쉴이 없어진 수컷 생쥐의 정자 머리 형태가 비정상적으로 나타났고, 이 생쥐로부터 태어난 자손 중 수컷의 비율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정상인 1대1 비율보다 훨씬 못 미치는 1대0.641로 집계됐다. 정상 및 유전자 결핍 생쥐 정소의 전사체 분석을 해본 결과, X 염색체에 존재하는 유전자의 발현은 증가하고 Y 염색체 유전자의 발현은 감소함을 발견했다.

결론적으로 테쉴은 전사인자 중 하나인 열충격인자-2(HSF2)와 결합해 Y 염색체 유전자들(Sly, Ssty)의 발현을 촉진한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즉, 테쉴이 Y 염색체를 가진 정자를 촉진해 성비 균형에 관여하게 된다. 연구팀은 “원인 불명의 난임을 진단 치료하는 새로운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현재 성장 중인 RNA 치료제 시장에서 테쉴을 활용한 난임 진단 바이오마커(생체 지표)나 치료제 개발의 기반으로 활용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노성열 기자 nos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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