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교육 따라 달라질뿐
남녀 차별로 이어지면 안돼
최근 ‘성(性) 평등’ ‘젠더(gender) 갈등’이 이슈가 되고 있다. 성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에 따른 구별을, 젠더는 사회적 성을 뜻하는 말이다. 1995년 베이징(北京) 제4차 여성 대회 정부 기구 회의에서 성별을 의미하는 단어로 ‘젠더’를 쓰기로 했다. 성은 남녀 차별적 의미를 내포한 반면, 젠더는 근대 이후 남녀 간의 사회적 대등 관계를 전제로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특성을 반영한 구분이다. ‘평등’ 가치 구현에 있어 생물학적 특징이 아닌 모든 여러 요소를 고려해 사회적 동등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이런 사회 패러다임 변화를 ‘젠더 혁신’이라 한다. 과학계에서도 젠더 이슈를 연구에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 있다.
그동안 의료계와 과학계에서 대부분의 성 불균형 연구자는 수컷 생쥐를 동물 모델로 이용해 왔다. 암컷 생쥐는 생리주기 등의 이유로, 복잡하고 난해한 실험을 계속 반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암컷의 호르몬 변화로 인한 수컷의 행동 양식 변화가 수반될 수 있다는 사유로 암컷은 허용되지 않은 관행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신약연구의 임상적용에서 심각한 오류와 부작용을 낳았다. 또 약의 효능뿐 아니라 부작용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예컨대 골다공증은 여성에게, 심장질환은 남성에게 자주 발생한다는 이유로 각각 여성과 남성에 한정된 신약개발을 하는 경우 골다공증이 있는 남성, 심장질환이 있는 여성에 대해 약의 효능은 적고 부작용은 높다. 지난 1997∼2001년 시판된 약물 중 80%가 남성보다 여성에게 부작용이 훨씬 심각하게 나왔다. 1980∼2016년 발표된 의·과학계 논문 1150만 건의 70% 이상이 남성 위주의 연구결과였다. 이러한 젠더 이슈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의 부상으로 더 심해졌다. 음성인식 알고리즘을 남성 대상으로 개발하다 보니 여성 음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AI 채용에서 백인 남성 중심의 학습으로 인한 흑인 여성 차별이라는 실수가 발생했다.
그러나 젠더 이슈가 확산되면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16년부터 동물을 연구할 경우 암수컷을 모두 포함하라고 가이드라인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3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에서 연구과정 기획단계부터 젠더 분석을 의무화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제3차 뇌연구촉진기본계획’도 젠더 분석에 기반한 뇌 연구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성별에 관해서 유전적, 생화학적, 생리학적, 세포학적 차이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뇌에 있어 남녀의 구조적 차이는 크지 않다. 성별 아닌 개별적 뇌 활용의 기능적 측면이 다를 수 있을 뿐이다. 남녀의 지능(IQ) 차이에 대한 논란이 지속돼 왔으나 최신 연구에 따르면,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장비로 여성과 남성의 뇌 영상 이미지를 분석한 결과 남성의 뇌가 여성의 뇌보다 11% 정도 크지만, IQ는 큰 차이가 없다. 뇌 크기의 차이는 단지 남성의 신체가 여성보다 크기 때문이다. 뇌가 작을수록 육안으로 볼 회백질(灰白質·grey matter) 비율이 높고, 좌·우뇌 간 연결 비율이 높아지는 특성을 보인다니 뇌를 활용하고 사용하는 측면에서 남녀 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더 넓은 의미에서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독특한 뇌 기능은 호르몬 차이뿐 아니라, 성장 과정과 배경 등 환경과 교육, 문화적 요소 등 외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생물학적 차이와 함께 다양하면서도 개별적인 배경이 종합적으로 고려돼야만 각자의 개성과 고유한 ‘차이(difference)’가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결과론적 관점에서 평가되는 ‘차별(discrimination)’로 이어지지 않게 될 것이다. 뇌과학은 과거 차별적 요소를 벗어나 각자 개인의 ‘차이’에 중점을 두고 정밀의료와 같은 맞춤형 뇌건강을 위한 미래지향적 연구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코로나 블루 극복 같은 정신건강, 퇴행성 뇌질환 극복 등 다양한 뇌 건강 문제에서 개인의 뇌는 모두 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의 생물학적 요소 외에 사회문화적 요소를 고려한 융합연구로 뇌과학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한국뇌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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