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의 운명│카일 하퍼 지음│부희령 옮김│더봄

연료·군수품 위해 마구 벌목
기후변화로 겨울에도 대홍수
장기간 농업경제에 타격입어

주거지 밀집에 배설물만 45t
급성 설사병 등 죽음의 물결


서기 410년 8월, 800여 년 동안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보다 광활하고, 그 웅대함을 모두 지켜볼 수 있는 눈이 세상에 없으며, 그 매력을 측량할 수조차 없는 도시”였던 로마가 고트족 군대의 말발굽 아래 짓밟혔다.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은 “무절제했던 위대함이 맞닥뜨리는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결과”이자 “번영은 무르익으면 쇠락하는 게 원칙”이라는 말로 로마제국의 쇠퇴를 정의했다. 하지만 미국의 역사학자 카일 하퍼는 ‘로마의 운명’에서 “로마제국의 몰락은 곧 인간의 야심에 대한 자연의 승리”라고 명토 박는다. 인간과 제도가 한 원인이지만 “자연이라는 야생의 힘을 길들였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빠져 멸망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화산과 태양 주기”, 즉 “생태 환경의 변화”가 로마 멸망의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이다.

로마제국은 “지리적 요소와 정치적 기술이 어우러져” 군사 패권주의의 틀을 다졌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2세기 초까지 지중해 일대의 기후는 안정적이었는데, 저자는 “기후라는 배경이 있었기에 로마라는 기적이 가능”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2세기 중반부터 로마인들의 행운은 바닥”에 떨어졌다. 현대 과학으로 알아낸바, “수세기에 걸쳐 홀로세에서 가장 극적인 기후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내 온난했던 로마의 기후 최적기가 사라지고 홍수가 빈번하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유가 있다. 로마제국은 “연료와 군수품을 탐욕스럽게 소비”했는데, 이를 위해 고지대의 숲을 마구잡이로 쓸어버렸기 때문이다. 봄부터 한여름에만 빈번하던 홍수는 겨울에도 이어지면서 로마의 농업경제에 타격을 줬다.

태평성대 시절 로마의 기후는 “성장을 위한 훌륭한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 밀은 기온과 강우의 시기와 양에 따라 민감하게 변하는데, 로마는 관개기술 등을 발전시키면서 생산량을 극대화시켰다. 제국은 대도시에 ‘공공 곡물 저장소’를 만들어 만약을 대비했다. 2세기 말, 3세기 초에 집권했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는 식량 공급을 성실하게 관리한 것으로 유명한데, 자기 사후에도 “도시를 7년이나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식량을 저장”해 놓았다. 하지만 로마의 식량 공급 시스템은 대개 “단기간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기후변화, 즉 장기간 제국에 타격을 주는 상황은 고려하지도, 고려할 수도 없었다.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보았듯이, 로마제국에서도 기후변화는 곧 전염병으로 이어졌다. 서기 160년 로마제국은 “신종 감염병의 진화”와 맞닥뜨렸다. 밀집된 도시 거주지, 지형의 끊임없는 변화, 제국 내부와 외부로 강력하게 연결된 교역망, 이 모든 것이 “특정한 미생물이 번식하기 좋은 생태계 형성에 기여”했다. 로마시 한 곳에서만 약 45t의 배설물이 배출됐다. 도시 내 정교한 관개시설과는 달리 배설물들은 “어설프고 불완전하게” 치워졌다. 계절에 따른 고대 로마의 사망률을 비교해 보면 “늦여름과 초가을에는 죽음의 물결이 몰려왔다.” 저자는 다양한 병균에서 비롯된 “급성 설사병이 로마의 주요 풍토병”이라고 강조한다. 가을에는 열대열말라리아원충에 의한, 고대인들이 “간헐적 열병”이라고 부른 전염병이 창궐했다.

법전을 편찬하는 등 찬란한 업적을 남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대, 즉 6세기 중반에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박테리아가 원인이 된 페스트가 만연했다. 페스트균은 바다에서는 배를 통해 “빠르게”, 육지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속에서 “느리게” 움직이며 로마제국의 쇠망을 재촉했다. 저자는 6세기와 7세기에 페스트와 기후 변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까지 가세한 종말론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환경의 격변, 정치적 해체, 종교적 소요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로마 몰락이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의 도시 안에서 세계가 멸망”한 것이다. ‘로마의 운명’은 로마의 흥망성쇠를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 즉 자연과학적 인과관계를 통해 추적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이제까지의 과학적 발견을 토대로 과거를 밝힌다면, 더 많은 문명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섣부른 생각까지 들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 문명을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다. 로마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 문명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함께 고민하기에 적절한 책이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