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고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입자와 에너지, 이곳과 저곳, 있음과 없음, 나와 너 등 모든 시·공간의 찰나를 마치 신선처럼 왔다 갔다 하며,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붓질로 그림을 그려왔다.” 한국 실험미술의 1세대 거장(巨匠)인 이강소(78) 화백이 최근 어느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렇게 덧붙였다. “장자(莊子)가 말한 ‘나비의 꿈’처럼 우리가 보는 세상은 환상이다. 각자 경험에 따라 현실은 달리 보인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캔버스도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다. 설치를 포함한 모든 내 작품은 존재의 증명이 아니다. 보는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한다. 나는 멍석만 깔 뿐이다. 보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느끼게 하는 것이 내 작업의 출발이다.”

헤엄치는 오리들을 추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 연작이 널리 알려져 ‘오리 화가’로도 불리는 그는 철학적 사유(思惟)를 회화·퍼포먼스·설치·조각·도예·비디오·사진 등 전방위 미술 장르에서 파격적으로 표현해왔다.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를 1965년 졸업한 그가 1973년 서울 명동화랑에서 연 첫 개인전 ‘소멸’부터 충격이었다. 전시장을 선술집으로 만들었다. 관객들이 술과 안주를 사 먹고 대화하며, 모든 존재와 삶의 ‘본질’과 ‘허상’을 탐색하는 작가의 퍼포먼스에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했다. 그 연장선에서 1977년 제9회 프랑스 파리 청년비엔날레에 선보인 ‘무제 75031’은 ‘관계성의 미학’을 구현한 명작으로, 지금도 세계 미술계에서 회자된다. 닭의 발목에 끈을 매어 말뚝에 묶고, 석회 가루를 놔뒀다. 닭이 3일 동안 움직이며 전시장 바닥에 석회 발자국을 남기게 했다. 닭을 본래 키우던 농장으로 보낸 뒤의 전시장에는 그 흔적과 과정의 사진 9장을 설치했다. 관객에게 인식·느낌·경험의 단서(端緖)만 제공했다.

이 화백이 “내가 의도한 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써지고 그려지는 그림”이라는 대표작 30점으로, 서울 삼청로 갤러리현대에서 지난 6월 16일 시작한 3년 만의 개인전 ‘몽유(夢遊·From a Dream)’가 오는 8월 1일 끝난다. “작가는 자기 파괴에 소홀하면 안 된다. 계속 변하지 않으면 골동품이 된다”고 말하는 그의 끝 모를 도전이 뿜어내는 ‘기(氣)’를 연작 ‘샹그릴라’ ‘허(虛)’ ‘청명’ ‘강에서’ 등을 통해 흠뻑 받을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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