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선영, 바람, 218×91㎝, 캔버스에 아크릴, 2020(갤러리담 전시작)
하선영, 바람, 218×91㎝, 캔버스에 아크릴, 2020(갤러리담 전시작)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

서정주는 ‘자화상’에서 세상 온갖 고난과 천대 속 바람(방황)이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토로했다. 그의 야생적 서정시가 가슴을 후벼 판다. 약관에나 이순에나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한’ 세월을 되새김질하는 바람. 바람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바람의 수집가 하선영, 그의 화면에선 언제나 이런저런 바람이 일고 있다. 감미롭게 속삭이는 바람, 몹시도 성난 난폭한 바람, 혼령이 다녀가는 바람, 꽃향기를 실어나르는 바람, 일탈을 일삼는 수상한 바람, 무언가를 갈구하는 바람…. 그들이 번갈아가며 모든 생명의 것들을 키운다는데, 틀린 말이 아니구나.

나무들이 팔처럼 가지를 뻗는 것은 바람을 더 많이 붙잡기 위해서다. 스스로 그늘을 만들어 태양을 견디도록 진화된 어떤 나무는 한 점 바람만으로도 은빛 뱃살을 뒤집어 빛을 반사, 열기를 식힌다. 화면은 이 놀라운 미물들의 지혜와 활력으로 가득하다. 곧 닥쳐올 태풍도 버틸 근력까지 키워주는 바람.

이재언 미술평론가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